"나 많이 찾았냐?"

다소 짧은 분량에도 임팩트는 강했다. '서울의 봄'에서 분노로 관객들의 심박수를 높인 김의성은 작품에 참여한 것이 영광이라고 밝히며 좋은 영화를 관객들이 알아봐 준 데 대한 기쁜 마음을 전했다.

21일 서울시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의 배우 김의성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김의성은 당일 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들린 직후 사라졌다 새벽녘에야 등장하는 국방장관 역을 맡았다.

김의성은 '서울의 봄'의 흥행에 대해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너무 좋다. 분량이 크든, 적든 제가 참여한 영화가 좋은 성과를 내고, 많은 사람이 사랑해 주시니까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오랫동안 한국 영화가 힘든 시기였는데 너무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흥행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사실 흥행하지 못할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뛰어넘었다. 관객들도 단순히 관람을 넘어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셔서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암살'(2015), '부산행'(2016), '극한직업'(2019)에 이어 김의성의 네 번째 천만 영화가 된다. 김의성은 "사실 (천만 돌파가) 저에게는 흔한 일"이라고 웃으며 "사실 '서울의 봄'의 천만 돌파는 개인보다도 한국 영화계에 꼭 필요한 숫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정우성의 첫 천만 영화가 되는 점을 언급한 김의성은 "무대인사도 한 번도 안 빠지고 노력하고 있다. 얼굴이 좀 못생겨졌던데 그래봐야 정우성"이라며 "진짜 힘들어하더라. 사실 정우성 배우가 한국 영화계에 기둥 같은 존재인데 인제야 이런 순간을 맞이한다는 게 감격스럽다. 전 가진 자의 여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의성이 '서울의 봄'에 출연한 것은 김성수 감독의 영향이 컸다고. 그는 "제가 이 영화에 흔쾌히 출연한 이유는 제가 평생 김성수 감독님과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감독님과 알고 지낸 건 30년이 넘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하다가 '서울의 봄'으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너무 존경하고, 작품 세계도 깊이 공감하는 감독님이기 때문에 뭐든 시켜주시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이런 역할은 제가 장인급이니까 믿고 시키신 게 아닌가 싶다. 감독님이 처음 만났을 때 '국방장관을 꼭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시더라. 무슨 역할이라도 참여하고 싶었고, 솔직히 이 역할은 작품 속에서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군복을 입고 화내고 있을 때 혼자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 사람이 나오면 공기의 흐름도 바꿔놓을 것 같았다. 근데 관객들까지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김의성은 영화 속 중요한 순간마다 얄미운 연기를 선보이며 '부산행',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밉상 연기를 자체 갱신했다.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상황 파악도 안 하고 도망쳤다 새벽에야 나타나 "나 많이 찾았냐?" 라는 속 터지는 명대사를 남겼다.

김의성은 김성수 감독에 대해 "순한 얼굴을 하고 존댓말을 하지만, 그 안에 무시무시한 열정을 가지고 계신 감독님인 것 같다"면서 "'서울의 봄' 때도 '이 대사 하면 어때요?'라고 툭 던져주신 게 '나 많이 찾았냐?'였다. 이 사람 캐릭터랑 잘 어울리더라. 제가 생각해야 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해 내시니까 좀 죄송하기도 했다. 대본에 원래 있던 대사가 아닌 현장에서 그날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극 중 이름은 바뀌었지만, 실화 소재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만큼 부담감도 있었을 터. 그러나 김의성은 "저는 없었다.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했고, 이 인물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진 않았다. 역사에 매몰되면 좁은 인간을 만들어 낼 것 같더라. 영화 속에서 조금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그렇게 표현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검열을 시작하면 영화도 힘들고, 배우도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헌법을 위반한 군사 반란을 소재로 다룬 거고, 역사적으로 선악이 분명하고, 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내린 죄를 다룬 이야기인데 논란이 될 게 있나 싶다. 논란이 되는 걸 보고 '군사 반란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네'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봄'에서 다시 한번 '분노 유발자'로 등극한 김의성은 "저에게 욕은 극찬이다. 악역을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것도 민망하지 않냐. 엉덩이를 한 대 차고 싶다는 반응이 많은데 그것도 좋다. 어차피 직접 차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호쾌하게 웃었다.

이렇듯 '서울의 봄'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게 된 김의성은 "언제나처럼 열심히 일하는 한 해였다. 상반기에는 일을 쉬고 다른 준비도 했는데 다른 때보다 특별한 게 없는데 연말에 좋은 영화가 나와줘서 잘한 것 같은 한 해가 됐다"고 했다. 특히 김의성은 최근 배우 매니지먼트사 안컴퍼니를 설립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 회사를 크고 멋진 회사로 만들지가 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한 김의성은 배우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의 활동은 물론 신인배우 발굴에도 힘쓸 예정이다. 그는 "저는 배우에게 작품을 추천하고, 감독에게 배우를 추천하는 등 사람들을 맺어주는 일을 좋아했다. 사실 큰 소속사에서 6년을 보내면서 영화인으로서는 즐거움이 많이 없어졌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배우 생활하다 보니까 좀 더 활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연기 잘하는 배우가 우선이지만, 잘생기고 예쁘면 더 좋다. 성격도 좋았으면 좋겠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팀플레이어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면서 "사실 배우는 좋은 팀플레이어가 아니어도 되긴 한다. 집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게 우선인데 그래도 저는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필요한 사람은 좋지만, 필요가 사라지면 같이 안 할 수 있다. 근데 좋은 사람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같이 일하고 싶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배우 중에서 안 좋은 일로 업계에서 멀어진 배우들이 많지 않나. 비슷한 실수를 하더라도 쉽게 복귀하는 배우들이 있고, 영원히 멀어지는 배우들이 있다. 그건 평소에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느냐가 중요한 거다. 일단 저는 스태프들한테 함부로 하는 꼴을 잘 못 본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의성은 '서울의 봄' 이후 내년 1월 '외계+인' 2부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지난해 7월 개봉한 '외계+인' 1부는 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 개봉했지만, 154만 명이라는 다소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김의성은 "저는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이자 이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가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많이 좋아해 주지 않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면서 "연결된 이야기를 둘로 나눠놓은 게 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런 건 차치하고 진짜 결전이다.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어서 기쁘고 잘 될 거라는 확신도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1년 넘게 촬영한 작품이고, 배우들도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서 칼을 갈고 있다. 이번에는 무조건 크게 성공시키고 싶어서 다들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