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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후 거절, 또 거절"..정성일, '쌈마이' 자처한 이유 [★FULL인터뷰]

  • 김나라 기자
  • 2024-11-01
배우 정성일(44)이 '전,란'으로 '더 글로리' 하도영을 지우고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추가했다.

정성일은 지난 2000년 연극 '청춘 예찬'으로 데뷔, 다수의 연극·뮤지컬에서 연기 내공을 쌓은 실력파. 이후 영화 '쌍화점'(2008),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2009), '비밀의 숲2'(2020), '우리들의 블루스'(2022) 등에 출연하며 매체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마침내 2022년 정성일은 '스타 작가' 김은숙 '픽'(pick)으로 넷플릭스 '더 글로리' 시리즈에 합류, '출세작'을 만났다. 배우 임지연 남편 하도영 역할을 맡아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정성일은 '대세' 꽃중년 반열에 우뚝 섰지만, 종잡을 수 없는 행보로 가히 연기파다운 길을 걷고 있다. 2023년 '더 글로리' 파트2 이후 차기작으로 넷플릭스 영화 '전,란'을 선택했는데, 왜군 장수 역할이라는 반전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앞서 10월 11일 공개된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전개를 그린다. '세계적 거장'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공동 각본가로 참여했으며,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정성일이 파격적으로 꿰찬 겐신 캐릭터는 조선 땅을 침략한 일본군의 선봉장이자 무(武)와 살육을 즐기는 인물. 이에 정성일은 도깨비의 탈을 쓰고 강렬하게 첫 등장, 절도 있는 검법과 능숙한 일본어 열연으로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정성일 등 출연진의 호연에 힘입어 '전,란'은 공개 이후 2주 연속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를 찍는가 하면, OTT 콘텐츠 통합 검색 플랫폼 키노라이츠에서 10월 3주 차, 4주 차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색다른 얼굴을 보여준 정성일은 스스로도 '전,란' 출연에 남다른 의미를 뒀다. 겐신은 '나이스한 개XX' 하도영과 시대, 국적, 언어부터 완전히 달랐기에 '솔깃'했다는 것.

정성일은 최근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더 글로리'가 끝나고 작품을 고르는데 더욱 신중해졌었다. 너무 잘 된 작품이고 캐릭터가 가진 힘이 세다 보니까 그런 비슷한 류의 대본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거다. 주인공이 됐건 조연이 됐건 비슷한 게 많이 와서, 고사를 많이 했었다. 한 쪽으로만 쏠리면 진짜 내 이름이 '하도영'이 될 거 같아서, 일부러 오랜 시간을 두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라고 터놓았다.

이어 그는 "소속사와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걸 찾아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고사하고, 고사하던 중에 '전,란'을 만난 거다. '전,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저한테 좋은 역할이겠다 싶었다. 극 자체도 ('더 글로리'와 다르게) 사극이고 역할 자체도 다른 나람 사람이었으니까. '더 글로리'의 하도영을 지우겠다, 이런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있을 거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고사하다가 선택한 '전,란'이라서 저한테는 색달랐다"라고 강조했다.
겐신 역할에 대해선 "하도영과 달라서 뭔가 오히려 접근하기 쉽더라. 근데 그런 이유로만 '전,란'을 선택한 건 아니다. '전,란' 대본 자체가 가진 힘이 있고 재밌었다. 함께하는 배우분들도 너무 좋고 겐신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라 결심했다"라고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대개 반삭발을 하고, 왜군이 어떻게 보면 뻔할 수 있는 캐릭터이지 않나.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이 안에서 어떻게 달라 보일 수 있을까, 변화를 줄 수 있는 걸 많이 고민했다. 단순히 사이코 패스가 아니라 조선이란 나라를 침략하러 왔다가 긴 시간을 보내며 살육하다 보니 어떤 살인에 대한 무뎌지는 그런 지점을 표현하려 했다. 또 천영을 마주함으로써 호기심이 생기고 그 변화에 중점을 뒀다"라고 차별점을 짚었다.

게다가 현대 일본어가 아닌 고어(古語)로 연기를 하는 큰 도전을 해낸 정성일. 그는 "제작팀에서 영화 '아가씨'(2016)의 일본어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일본분이시다. 근데 제가 대본만 외우기엔 아예 일본어를 할 줄 모르니까 몇 개월 동안 초등학생처럼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외웠다. 그렇게 현대말을 배우고 고어를 배웠는데 진짜 일본인처럼 보이기 위해 억양을 특히 신경 썼다. 현장에서도 한국말을 하실 줄 아는 일본인 배우 선생님과 늘 불어 다니며 계속 연습했다"라고 노력을 전했다.

이어 "6개월이 넘도록 연습했었는데, 다행인 건 일본인 친구가 자연스러웠다는 얘기를 해줘서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어떤 일본인은 '더빙한 줄 알았다'라는 칭찬을 해주시더라. '연기 잘했어'보다 더 기뻤다. 왜냐하면 '전,란'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다 보니까 일본인들도 시청하지 않겠나. 현지인이 제 일어 연기를 봤을 때 '쟤 왜 저래' 해버리면 극 자체를 깨버리는 것이니까, 일본 사람이 봐도 '일본 배우인가' 할 만큼 정말 딥하게 배웠던 거였다. 선생님께서도 기존 일어 연기의 오류를 잡아주시며 굉장히 디테일하게 알려주셨다"라며 진중한 자세를 드러냈다.

액션 연기에 관해선 "'쌍화점' 때 2주간 합숙하며 훈련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때는 시간이 타이트하다 보니 정말 말도 안 되게 훈련을 받았으니까(웃음). 저뿐만 아니라 다들 두 손 놓고 말을 탈 수 있게 됐을 정도로 엉덩이가 다 까지도록 배웠었다. 기저귀까지 차고 말을 탔던 기억이 난다. 몸으로 체득한 건 쉽게 안 잊혀지더라. '될까?' 했는데 진짜 되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초호화 캐스팅 라인업에 얼떨떨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정성일은 "저도 '와 진짜? 미쳤다, 이 사람들이 다 모인다고?' 정말 놀랐었다. '강동원·박정민·차승원·진선규·김신록 거기에 내가 낀다고? 내가 있어도 되나?' 싶었다. 제작도 박찬욱 감독님에, 김상만 감독님이 연출을 맡으셔서 뭔가 내가 들어가도 됐나 싶은 느낌이 든 거다. 얼마 전에도 함께 GV(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하고 찍은 사진을 보는데, 차승원·강동원·박찬욱 감독님 그 사이에 제가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더라. 가보로 남겨둬야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진짜 현장에 연예인을 보러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열렬한 팬심을 고백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지만 정성일도 부쩍 높아진 인기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는 "'더 글로리' 끝나고 나서 많이 놀랄 때가 있긴 하다. 휴식이 됐건 일이 됐건 해외에 나가면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가는 곳마다 다 알아보셔서 좀 놀랐다. 같이 다녔던 동네 친한 형들이 '네가 뭔데, 왜 이래' 할 정도로 말이다(웃음). 그럴 땐 저도 '뭐지?' 싶다가도 '아 역시 넷플릭스 힘, 더 글로리 힘은 대단하구나' 느낀다. '전,란'도 공개된 후 일본분들이나 다른 나라 팬분들이 계속 많은 메시지를 보내주고 계신다. 넷플릭스가 무섭고 대단한 거 같다. 요즘은 어쩔 수 없이 글로벌이 기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실감하고 있다"라고 놀라워했다.
연기 변신에 성공한 정성일은 뜻밖에 "웃기고 싶다"라는 욕심을 내비치며, 어김없이 뻔한 길을 거부했다. 그는 "저는 코미디를 너무 좋아한다. 사복도 트레이닝복, 청바지를 주로 입고. 근데 (작품에서) 보이는 건 슈트이다 보니까, 내가 너무 슈트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아 그런 게 좀 불편했다. 저는 딱딱하지 않은 인물도 할 수 있는데. 공연할 때 이것도 저것도 했던 것처럼, 좀 다른 모습으로 범위를 넓혀나가고 싶다.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라고 열의를 불태웠다.

특히 정성일은 "망가지는 건 두렵지 않다. 저 자체가 이미 망가져 있다"라고 의외의 '엉뚱미'를 발산, 유쾌한 성격을 엿보게 했다. 그는 "저도 20대 30대 때는 멋있고 주인공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벽이 느껴졌다. 나보다 멋있는 사람이 훨씬 많기도 한데 내가 멋있는 것만 하면 다른 걸 할 수 없다는 것, 내 배우 생명이 짧아진다는 걸 깨달았다. 속된 말로 '니마이'(고상함), '쌈마이'(B급·가벼움)라고 치면 '쌈마이'를 못하는데 언제까지 '니마이'를 할 수 있겠냐는 거다. 그래서 망가지는 걸 일부러 찾아 했었다. 공연할 때는 바보, 모지리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게 저한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차기작인 디즈니+ '트리거'에서도 많이 망가진다. 저는 언제든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다"라고 말해 기대감을 자아냈다.
김나라 기자 | kimcountr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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