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세은이 고(故) 이순재를 '진짜 어른'이라 칭하며 그리움을 드러냈다.이세은은 25일 SNS에 고 이순재를 떠올리며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건 TV 속 대발이 아버지였다. 내가 꼬마 때에도 선생님은 '국민 아버지'셨다. 대학 1학년, 선생님을 강의실에서 처음 뵈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돈 때문에 강의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사명과 책임감으로, 우리들을 사랑해 주셔서, 정말 사랑해 주셔서 그렇게 함께 해주셨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학교 밖에서 우연히 뵌 교수님은 자상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언제 어디에서 나를 보셔도, 시상식 배우 석에 앉아 계시고 내가 사회를 볼 때에도 나에게 손짓하시며 주변 분들에게 '쟤가 내 제자'라고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공연을 할땐 무대 뒤로 오셔서 대사가 빠르다, 천천히 해라, 나른다, 대사 너무 날리지 마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고 고 이순재의 생전 연기 조언을 회상했다.
이어 "촬영장에서 선생님은 어떠한 개인적인 요구도 일절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유명하셨다"며 "사극이나 시대극을 찍으면 주요 인물만 50여 명에 이른다. 배우들은 12시간씩 대기 하기도 일쑤다. 주연 배우들은 스케줄에 쫓겨 불가피하게 일정 조정을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계신 곳은 예외다. 선생님은 어떤 편의도 요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가장 연장자셔도 가장 체력적으로 모든 면에서 충분히 배려를 요구하실수 있음에도 하지 않으셨고 먼저 제안해도 마다 하셨다 . 다 고생하는데 나 하나 이롭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촬영 순서대로 5시간이고 7시간이고 기다리셨다. 때문에 선생님이 계신 곳은 대부분 그 어느 누구도 개인 편의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이세은은 "선생님은 늘 진짜 어른이셨다. 우리가 바른 생활 습관으로 자기관리를 잘 하는 배우가 되라고 가르쳐 주셨다. 겸손하라 하셨다. 항상 몸소 보여주셨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하듯이,열마디 말보다 모범을 보여주시던 아버지시고 참 어른"이라고 고 이순재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깟 돈 때문이 아니라 패기 넘치고 열정 넘치는 마음으로 신생 학과에 신입생을 가르치러 오셨던 우리 교수님, 아버지와 같은 분, 천국에 가심이 분명하신 우리 교수님, 그곳에서도 늘 그렇게 부지런하시고 성실하실 우리 교수님. 내내 평안하시기만 기원한다. 수많은 제자와 후배 동료들의 추모가 가족분들께도 부디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감히 나 따위는 닿지도 못할 선생님의 이 위대한 발자취를 기리며"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앞서 고 이순재는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엄수된다.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상주로는 아내와 두 자녀가 이름을 올렸다.
고인은 1956년 연극 데뷔작 '지평선 너머'를 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청기와집',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게트', '우리 읍내', '춘향전', '빠담빠담빠담', '세일즈맨의 죽음', '돈키호테', '앙리 할아버지와 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리어왕' 등을 통해 무대에 올랐다. 또한 드라마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사모곡', '허준', '상도', '이산',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개소리'에 출연하며 연극, 방송, 영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활약했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한 고 이순재는 그간 건강 악화로 재활 치료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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