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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 "살벌한 빌런? 저 겁보예요" [★FULL인터뷰]

  • 윤성열 기자
  • 2022-01-31
몽글몽글 순두부처럼 부드럽고 순하다. 세상 여리고 겁도 눈물도 많단다.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 속 살벌한 대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맹순이 같다고들 하세요. 세상 허당에 빈틈도 많거든요. 하하."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짙은 화장을 지우고 '순한 맛'으로 돌아온 배우 차지연(40)을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밝고 따스한 에너지가 인터뷰 공간을 가득 메웠다.

"실제 만난 분들은 '그분이 맞으신가요?'라며 의아해하실 때가 많아요. 평소엔 노 메이크업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녀서 잘 못 알아보세요. 동네서 운동화 신고 트레이닝복 입고 아이 데리고 편하게 다니거든요. 가끔 알아보는 분들이 '아유~ TV에서 그렇게 무섭게 생긴 양반이, 어쩌면 이렇게 수수해요' 말씀해 주세요."

지난해 차지연은 제대로 '상복'이 터졌다. 지난해 12월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이하 '2021 AAA') 신스틸러 상을 수상한데 이어 'SBS 연기대상'에서 미니시리즈 장르·판타지 부문 여자 조연상을 거머쥔 것. '모범택시'에서 선보인 임팩트 있는 연기로 일궈낸 성과였다. 최근엔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뮤지컬 '레드북'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네요. 2022년 시작이 좋아요. '이제 더 열심히 달릴 일만 남았구나' 생각해요."

'모범택시'에서 차지연은 낙원신용정보 백성미 회장 역을 맡아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백성미로 분해 밀도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차지연은 "촬영 내내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신이 났다"며 "스태프분들과 얼굴 보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끝까지 촬영 현장에 남아서 집에 잘 안 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호철과 빌런 케미 "둘 다 겁 많은데..."

극 중 구비서 역의 이호철과는 '빌런 케미'가 돋보였다. 이호철도 차지연처럼 작품 속 거칠고 무시무시한 악역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고. 차지연은 "(이)호철씨랑 첫 촬영을 나이트클럽에서 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출연자 중 가장 겁 많고 여린 두 사람이 제일 센 악역을 하고 있더라"며 웃었다. 이호철은 대표적인 '노안 배우'로 꼽힌다. "감독님과 첫 미팅할 때, 제가 '어머, 대선배인가 보다. 잘 모시겠습니다'고 했더니, 연출부에서 '지연 씨보다 후배'라며 막 웃더라고요. 저도 못지않게 노안이라 얘기하기 되게 편했어요. 하하."

'모범택시'에 함께 출연한 김의성은 차지연을 촬영 현장에서 군기가 바짝 들어있던 배우로 기억했다. 드라마 '여인의 향기'(2011) 이후 무려 10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라니, 그럴 만도 했다. 뮤지컬 무대에선 이미 최고의 스타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카메라 앞에선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긴장을 많이 해요. 겁보에요. 처음엔 너무 무서웠나 봐요.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허리 굽혀 인사했죠. 하하. (김)의성 선배님이 저희 안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셨어요. 그 무게감이 없었으면 후배들도 한 마음 한 호흡으로 모이기 어려웠을 거에요. 선배님의 숨소리, 그 눈커풀의 떨림 하나까지 직접 바로 앞에서 보면서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간신' 이후 생긴 트라우마 극복.."박준우 감독 만난 건 행운"

차지연은 TV나 영화 같은 매체 연기는 영화 '간신'(2015) 이후 한동안 거리를 뒀었다. 음악 예능 '불후의 명곡'에서 음악극 형태로 꾸민 송대관의 '네 박자' 무대를 계기로 '간신' 섭외를 받았다는 차지연은 "모두가 보는 야외 연회장에서 연산군의 한을 풀어주는 장면을 마치 제를 지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찍고 싶어서 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면서 "당시 뮤지컬 일정도 안 맞고 한 겨울에 찍어서 정작 그 장면은 촬영을 못했다"고 털어놨다.

"제 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신이 날아간 거예요. 감독님도 저도 많이 아쉬워했죠. 당시 몸도 많이 아파서 콘트롤도 잘 안되고 신체도 계속 붓고…엄청 힘들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환경의 리듬을 전혀 모른 채 현장에 갔어요. 모든 스태프분들이 잘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저는 너무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겁도 많이 났고, 정서적으로 힘들었죠. 한동안 카메라 앞에 서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마음의 문을 확 닫아버렸죠."

트라우마에 갇힌 차지연을 꺼내준 건 '모범택시'를 연출한 박준우 감독이었다. 차지연은 박 감독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잊지 않았다.

"박 감독님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정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현장을 컨트롤 하시는 분이었요. 지도를 받는 입장에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죠. 굉장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에요. 낯선 현장에서 편안하고 쉽게 익숙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도해 주신 분이라 절대 잊을 수 없죠. '2021 AAA' 상 받고 나서도 감독님께 연락드렸더니 감독님이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이제 조금씩 카메라에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작품에서 뵙고 싶어요."

'모범택시'는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동착취, 학교폭력 등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범죄 사건들을 사실감 있게 녹여냈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스토리였지만, 실제 복수 대행 업체가 있다면 어떤 걸 의뢰하고 싶을까. 차지연은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아동 학대 범죄 '정인이 사건'을 떠올렸다.

"상상해 보면 몸이 시려요. 말할 수 없을 만큼 얼마나 고통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남편이랑 되게 많이 울었어요. 학폭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친구들도 그래요. 저도 자식이 있기 때문에 피부로 와닿아요. 그런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움찔움찔하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에요. 내가 더 올바른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동서양 아우르는 매력.."가장 큰 무기"

차지연의 외할버지는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고(故) 박오용이다. 차지연도 어릴 적부터 북을 두들기며 국악을 익혔다. 차지연은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베이스는 동양이지만 체형은 서구적이다"며 "동서양을 변화무쌍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나의 가장 큰 무기"라고 고백했다. 172cm의 큰 키와 긴 팔다리는 한때 차지연에게 큰 콤플렉스였다.

"개성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땐 '선머슴 같다', '보이시하다', '남자 같다'고 했어요. 그런 반응들이 자존감을 낮게 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히려 이런 신체적 조건들이 좀 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길 들으면서 콤플렉스가 아니라 장점이자 무기로 바뀌었어요. 예전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늘 부족한 것만 찾아내고 괴롭히는 성격이었는데, 이젠 스스로를 믿어주고 잘했다고 칭찬도 해요. 하지만 절대 자만하지 않아요. 스스로 자만하는 순간 배우로서 생명력을 잃는다고 생각해요. 항상 감사함으로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남편 윤은채, 교통사고로 힘들 때 다가와" 최초 고백

남편은 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차지연은 2015년 4살 연하의 뮤지컬 배우 윤은채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이듬해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차지연은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전할 때마다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남편은 내 삶의 중심 축"이라며 "그 중심이 없어진다 상상해 보면 내 삶이 송두리째 휘청거린다"고 말했다. "남편은 정말 한결같이 사랑과 배려로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어요. 아이를 양육할 때 기꺼이 함께해 주고, 오히려 아이에게 굉장히 가깝게 있어 주니까 아이의 정서도 안정이 돼요. 가정이 건강하게 갈 수 있는 건 남편의 역할이 제일 커요."

이들 부부는 2015년 뮤지컬 '드림걸즈'에 함께 출연하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결혼에 골인했다. 차지연은 '드림걸즈' 공연 당시 위험천만한 교통사고를 당해 마음고생을 했다. 주위엔 경미한 사고로 알려졌는데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주차비 기름값 한두푼 아껴보겠다고 스쿠터 한대를 구입했는데, 저녁 공연 직전에 사고가 났어요. 교대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쪽으로 좌회전 신호를 받고 가려는데, 다른 차선에서 달려오던 무면허 운전자가 과속으로 저를 그대로 들이받은 거예요. 몸이 떠서 4차선까지 날라갔어요. 붕 날라가는 순간 '아, 내가 죽던지 마비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차지연은 곧바로 병원에 실려갔다. 다행히 치명적인 큰 부상은 없었지만 온몸에 피멍이 들고 타박상을 입었다. "다음 공연 생각만 나는거예요. 몰려있던 시민들에게 전화기 좀 달라고 해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공연 못간다고 하고 그 자리서 실려갔어요. 그런데 상대가 무면허면 보상을 못 받더라고요. 게다가 골절이 없어서 상대방이 구속이 안 된대요. 전치 4주 이상 진단이 나와야 한대요. 결국 제 돈으로 치료 다하고 온갖 군데 신경 주사 맞고 멍든데 테이핑으로 감은 다음에 무대에 섰어요. 사흘 뒤에..."

그동안 왜 피해 사실이 매스컴에 알리지 않았을까. 차지연은 "그땐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이고, 그나마 자꾸 센 이미지로만 작품을 하고 있어서 기사화되는 게 겁이 났다"며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다면 잘못된 이미지가 남을 것 같아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한참 속앓이를 하고 있을 무렵, 윤은채가 그녀 곁에 다가왔다. 운명처럼 스며들듯.

"제작자, 배우분들도 제가 오토바이 운전하다 그렇게 치인 줄 몰랐어요. 그때 딱 남편이 '누나 괜찮으세요' 카톡을 보내더라고요. 그리고 복귀한 무대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저한테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대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음의 문을 쉽게 안 열었지만 건실한 사람이라 조심스럽게 만나볼까 했는데, 바로 거의 다음 날 '우리 결혼할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응? 이 친구가 정신이 바로 잡힌 친구인가'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예식장을 잡고, 결혼식을 올리고 있고, 아이를 낳았어요. 아직도 솔메이트 친구 같고 실감이 안 나요."
◆차기작 '블랙의 신부'.."스타? 진솔한 배우였으면"

차지연은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의 신부'로 다시 안방극장을 찾는다. 극 중 결혼정보 회사 렉스의 안주인 유선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촬영은 이미 마쳤다. 차지연은 "굉장히 침착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게끔 보이는 게 목표였다"며 "선의 편인지 악의 편인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의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나름 애를 썼다. 유선이 가는 곳곳이 모두 럭셔리하고, 손에 닿는 것들이 고가의 제품들이라 처음엔 되게 어색했다. 낯설고 부끄럽더라.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숙제였다"고 웃었다.

그는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동 영역을 넓혔지만 여전히 '뮤지컬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늘 출발선상에 선 것처럼 열정을 다하는 차지연. 초심을 잃지 않고 관객과 시청자를 기만하지 않는 성실함이 그의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아직은 '배우'라고 하기 좀 부끄러워요. 누가 봤을 때라도 참 멋있게 자신만의 올바른 길을 묵묵히 성실하게 걸아가는... 전 그게 좋아요. 뭔가 '스타?' 이런 것보다는 작품에 대한 태도가 진중한, 관객에 대한 태도가 진솔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끝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윤성열 기자 |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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