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생각을 해봤다. 이준영(25)이 처음부터 연기를 했더라면 얼마나 더 성장했을까. 물론 유키스 시절 그의 활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만큼 연기자로서 그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점점 무르익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에서 악질 탈영병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그는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에서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회사원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그는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2021 Asia Artist Awards, 이하 2021 AAA)에서 베스트 초이스상을 수상했다. 올해 차기작도 두 작품이나 찍고 있다. "가수 때려치우고 배우하라"는 선배들의 칭찬이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준영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얼마 전 스타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과분한 상을 받았다"며 "덕분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이게 편하다"며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2021 AAA'에서 못다 한 수상 소감이 있다면.
▶이렇게 큰 시상식에 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당황스러웠어요. 상 이름도 너무 멋있어서 '내가 그렇게 좋은 연기를 했나' 의문이 들었죠. 열심히 했다고는 자부할 수 있지만, 베스트 초이스상에 걸맞은 연기를 아직 보여드리진 못한 것 같아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자극제가 됐어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상 덕분에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생각보다 그 상이 주는 무게감과 압박감이 크더라고요. 덕분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오브제가 생긴 것 같아요. 더 건강하게 연기적인 고민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살은 좀 뺀 건가요? '모럴센스'는 노출신이 있어서 몸 관리를 해야 했을 것 같아요.
▶'용감한 시민'이라는 작품 촬영하면서 몸을 좀 키웠다가 지금은 다시 뺐어요. 72kg까지 찌웠다가 지금은 65~66kg 정도예요. 작년 초에 '모럴센스'를 촬영했을 때에는 감독님이 평범한 직장인의 몸을 원하셔서 오히려 살을 찌워는데 급급했어요. 딱 봤을 때 멋진 몸은 싫다고 하셔서... 불행 중 다행이었죠.(웃음) 그런데 워낙에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하루에 다섯 끼씩 먹었어요.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나요?
▶열심히 작품 촬영하고 있어요. 코로나19에 걸려서 일주일 격리 후에 밀린 촬영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용감한 시민', '황야' 두 작품 찍고 있어요.
-작년에 정말 쉼 없이 활동한 것 같아요. 다작의 비결이 뭘까요?
▶신선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아직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된 것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거라 많이 찾아주시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또 얼굴을 막 쓰는 편이거든요. 다양한 표정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점도 많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드라마 '이미테이션'과 '너의 밤이 되어줄게'에서 연달아 스타 역할도 했어요.
▶제 인생과는 다르게 잘 되고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왔죠.(웃음) 정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같은 결의 역할이 들어오면 피해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던 게, 비슷한 설정의 캐릭터라도 다르게 보이면 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더 악착같이 캐릭터를 분석했죠. 감사하게도 두 작품을 보신 분들은 윤태인과 권력은 정말 다른 사람 같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앞으로 다른 역할을 맡을 때도 뭔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테이션'의 권력과 '너의 밤이 되어줄게' 윤태인은 어떻게 다르게 연기했나요?
▶권력은 멤버들을 엄청 챙기고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화합을 중요시하는 친구였어요. 반면 윤태인은 자기중심적인 친구라 내 음악에 해를 끼치는 건 불같이 끊어내고 '다 내가 맞아'라는 성격을 가진 친구였죠. 상반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뭐가 달랐을까 찾기 시작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해 갔던 것 같아요.
신선한 마스크와 안정감 있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이준영은 매 작품 변화무쌍한 연기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으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달 11일 공개된 '모럴센스'에서도 또 한 번 그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빛을 발했다. '모럴센스'는 'BDSM'이라는 특별한 성적 취향을 소재로 한 영화. 이준영은 극 중 완벽한 모습 뒤에 은밀한 취향을 감춘 회사원 정지후 역을 맡아 아찔한 로맨스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소녀시대 출신 서현과 함께 매력적인 연기 변신을 꾀했다.
-'모럴센스'에 대한 반응도 뜨겁더라고요.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는 예상 못 했어요. 집이 강남역 근처인데, 강남역 전광판에 '모럴센스' 티저가 나오더라고요. 이어폰 끼고 아무 생각 없이 뭘 사러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옆에 계신 분이 알아보셔서 좀 부끄러웠어요. '같은 사람 아니에요?'라고 물으시길래, '예 맞습니다' 하고 그 자리를 떴던 기억이 나네요. 마스크도 썼는데 알아보셔서 정말 신기했어요.
-'모럴센스' 출연 계기는?
▶출연 제안이 왔어요. 일단 재밌겠다는 생각이 1번으로 들었죠. 시나리오 자체도 너무 재밌었고요. 배우로서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끓게 해주는 글이었어요.
-소재가 파격적이다 보니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그런 부담은 많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정지후의 성격과 마음을 잘 대변할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은 컸어요. 플레이 신은 항상 회의를 하고 리허설도 많이 해서 부담이 덜 했어요. 정지후의 마음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에 많이 중점을 뒀어요.
-정지후는 어떤 캐릭터라 생각하고 연기했나요?
▶약간 저 같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되게 여리고 조용하고 낯도 많이 가리거든요. 유키스로 데뷔했을 때는 그런 모습들이 많이 금지됐어요. 막내는 밝아야 했거든요. 내가 아닌 모습들로 살아가니까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죠. 그런 부분들이 정지후를 연기하는데 많이 도움이 됐어요.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하고, 그 숨겨야할 때 느꼈던 감정들을 되새겼던 거 같아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유키스 시절엔 뭔가 비타민 막내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네, 제가 막내고, 10대니까 풋풋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제 모습으로 처음부터 임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가끔해요.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그 순간 만큼은 그래도 행복했고, 너무 필요한 시기였고, 그만큼 연기하는데 도움도 됐으니까요.
-서현과 호흡은 어땠나요?
▶동지애가 많이 생겼어요. 같이 리허설 할 시간도 많고 촬영 끝나고 얘기할 시간도 많아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되게 재밌게 잘 찍었어요. 너무 착하고 배려도 잘 해주셨어요. 저보다 선배니까 리드도 많이 해주셨고요.
-처음엔 좀 어색했을 것 같아요.
▶많이 어색했어요. 직속 선배고,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배님 오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했나 봐요. 저는 되게 예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랬는데 그게 되게 불편하셨나 봐요. 원래 그게 제 성격이에요. '다나까'를 많이 써요. 밥을 같이 먹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때 먹었던 맛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선배님이 질문하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계속 바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좀 어색함을 풀었어요?
▶리허설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어요. 둘 다 막 열정적이게 돼서요. 저도 '이건 어떻습니까'라고 의견도 내고, 말이 좀 많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선배님 이건 괜찮습니까'라고 하면 선배님이 '누나라고 불러', '말 편하게 하라'고 하고, 저는 '괜찮아..요?' 하면서 서서히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플레이신에서 강아지 연기가 되게 인상적이었요.
▶영상을 많이 봤어요. 자기 전에 유튜브로 강아지 울음 소리, 짖는 소리, 소형견, 대형견 소리 다 찾아봤죠. 시청각 교육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움직이는 것도 정말 많이 해보고요. 감독님이 후시를 안 하고 현장에서 했던 걸 그대로 쓰셨더라고요. 현장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연기를 하면서 불편한 건 없었나요? 하이힐로 등을 누른다던가...
▶예상외로 없었어요. 리허설을 많이 하다 보니까 본 촬영 때는 불편함이 없었어요. 하이힐 신은 등에 더미 같은 걸 대서 실제론 아프진 않았어요.
-본인이 몰랐던 영역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을 것 같아요.
▶몰랐던 용어들을 처음 알게 됐죠. '아, 이렇게 불리는 구나' 하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특별히 또 참고한 게 있나요?
▶다른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이런 걸 잘 못하는 편이에요. 참고를 하면 어느 순간 제가 그분의 말투까지 따라 하고 있더라고요. '모럴센스'는 원작 웹툰이 있으니까 웹툰을 많이 봤어요. 표정들이 많이 나오는 신들은 빨리 넘기고, 감정신 위주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지후의 마음을 어떻게 더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준영은 본래 가수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감명 깊게 보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준영은 "부모님의 반대로 비보잉은 어려웠고, 팝핀을 시작했다"며 "댄스 배틀 행사도 나가고 그러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면 다 사기인 줄 알고 도망다녔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18세의 나이에 유키스로 데뷔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3년 뒤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에 캐스팅됐고, 엉겁결에 시작한 연기 활동이 이제는 본업이 됐다. "그때는 일이 많이 없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고 신기했어요."
-연기 활동하면서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책의 내용에 따라 프레임 안에서 행동과 말로 표현하는 작업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 글을 제가 대변하는 느낌이 된 거 같았죠. 점점 시간이 지나고 독립영화도 찍어 보고, 웹드라마도 해보니까 제대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유키스 데뷔하고 원래 계획은 뭐였어요?
▶어렸을 땐 대한민국을 씹어먹는 가수가 되고 싶었죠. 유키스가 해체한 건 아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됐으니까 지금은 멤버 형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다시 가수 활동 계획은 있어요?
▶당분간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회사도 새로 시작하는 시기라 책임감도 있고, 제 개인적으로도 연기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가수 활동을 절대 안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 노래 부르는 거 되게 좋아해요.(웃음)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해외 팬 미팅 투어를 돌면서 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네. 계획 중에 있습니다. 기다려주신 팬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은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기자로서 가장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뭘까요?
▶'D.P'인 것 같아요. 액션 자체가 아무래도 처음이었고,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었는데, 다행히 그게 성공했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그 이후에 작품도 많이 들어왔고요. 덕분에 액션 영화도 2개를 찍고 있어요. 뭔가 여태까지의 저를 내려놔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욕도 하고 싸움도 하고 그런 시도들이 되게 재밌었고, 보시는 분들도 신선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아요?
▶지치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안주하는 게 싫어요. 너무 편안해지면 실수도 많이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도 있고,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믿음에 배신하고 싶지 않아요. 책임감이 좀 강한 편이라서요. 1인 기획사를 차린지도 얼마 안 돼서 열심히 발로 뛰면서 해야 해요.
-매 작품 결과물에 대해선 만족하나요.
▶불만족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시청률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청률에만 연연한다면 그 시간에 맞춰서 작품을 봐주시는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 아닌가 생각해요. 시청률을 생각할 시간에 내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차기작 '용감한 시민'은 어떤 작품인지 살짝 귀띔해 준다면.
▶무에타이 선수 출신인데 운동을 그만둔 인물이에요. 원작에서 고등학생으로 나오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2년을 꿇었어요. 21살인데 고3인 학교에 군림하는 악질 나쁜 놈이죠. 직접 사람을 때릴 때도 있긴 한데 주로 제 패거리를 시켜요. 돌아가면서 맘에 안 드는 애를 지정하면서 괴롭히는 거죠. 빌런이에요.
-군 입대는 언제쯤 계획하고 있어요?
▶건강할 때 빨리 다녀오고 싶어요. 군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군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일할 때 말고는 세상 살아가는 걸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온전히 집중할 있을 것 같아요. 뭐가 됐든 군대는 저한테도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도 만나게 되는 거니까 그런 부분도 조금 기대가 돼요. 훈련도 기대가 돼요. 제가 몸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2022년 목표는?
▶지금 제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상하게 변질 안 됐으면 좋겠어요. 더 경각심을 갖고 있는 시기에요.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깨고 싶어요. 물론 그게 나쁜 말만은 아니지만, 그냥 저는 저답게 살고 싶어요. 저는 듣기 좋은 말이 '현장에서 밥 먹으러 제일 먼저 뛰어간다'는 거예요. 스태프들과 그런 걸로 경쟁해요. 스태프들도 이런 배우 처음 봤대요. 인간적이고 좋잖아요. 저는 연예인으로서 꼭 갖춰야 하는 그런 게 갑갑하더라고요. 저는 저답게 사는 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요. 아직 모난 부분이 많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거든요. 그걸 유지하고 싶어요.
-끝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윤성열 기자
| bogo109@mt.co.kr
그는 '2021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2021 Asia Artist Awards, 이하 2021 AAA)에서 베스트 초이스상을 수상했다. 올해 차기작도 두 작품이나 찍고 있다. "가수 때려치우고 배우하라"는 선배들의 칭찬이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준영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얼마 전 스타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과분한 상을 받았다"며 "덕분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이게 편하다"며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2021 AAA'에서 못다 한 수상 소감이 있다면.
▶이렇게 큰 시상식에 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당황스러웠어요. 상 이름도 너무 멋있어서 '내가 그렇게 좋은 연기를 했나' 의문이 들었죠. 열심히 했다고는 자부할 수 있지만, 베스트 초이스상에 걸맞은 연기를 아직 보여드리진 못한 것 같아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자극제가 됐어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상 덕분에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생각보다 그 상이 주는 무게감과 압박감이 크더라고요. 덕분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오브제가 생긴 것 같아요. 더 건강하게 연기적인 고민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살은 좀 뺀 건가요? '모럴센스'는 노출신이 있어서 몸 관리를 해야 했을 것 같아요.
▶'용감한 시민'이라는 작품 촬영하면서 몸을 좀 키웠다가 지금은 다시 뺐어요. 72kg까지 찌웠다가 지금은 65~66kg 정도예요. 작년 초에 '모럴센스'를 촬영했을 때에는 감독님이 평범한 직장인의 몸을 원하셔서 오히려 살을 찌워는데 급급했어요. 딱 봤을 때 멋진 몸은 싫다고 하셔서... 불행 중 다행이었죠.(웃음) 그런데 워낙에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하루에 다섯 끼씩 먹었어요.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나요?
▶열심히 작품 촬영하고 있어요. 코로나19에 걸려서 일주일 격리 후에 밀린 촬영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용감한 시민', '황야' 두 작품 찍고 있어요.
-작년에 정말 쉼 없이 활동한 것 같아요. 다작의 비결이 뭘까요?
▶신선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아직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된 것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거라 많이 찾아주시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또 얼굴을 막 쓰는 편이거든요. 다양한 표정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점도 많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드라마 '이미테이션'과 '너의 밤이 되어줄게'에서 연달아 스타 역할도 했어요.
▶제 인생과는 다르게 잘 되고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왔죠.(웃음) 정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같은 결의 역할이 들어오면 피해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던 게, 비슷한 설정의 캐릭터라도 다르게 보이면 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더 악착같이 캐릭터를 분석했죠. 감사하게도 두 작품을 보신 분들은 윤태인과 권력은 정말 다른 사람 같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앞으로 다른 역할을 맡을 때도 뭔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테이션'의 권력과 '너의 밤이 되어줄게' 윤태인은 어떻게 다르게 연기했나요?
▶권력은 멤버들을 엄청 챙기고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화합을 중요시하는 친구였어요. 반면 윤태인은 자기중심적인 친구라 내 음악에 해를 끼치는 건 불같이 끊어내고 '다 내가 맞아'라는 성격을 가진 친구였죠. 상반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뭐가 달랐을까 찾기 시작하면서 캐릭터를 완성해 갔던 것 같아요.
신선한 마스크와 안정감 있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이준영은 매 작품 변화무쌍한 연기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으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달 11일 공개된 '모럴센스'에서도 또 한 번 그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빛을 발했다. '모럴센스'는 'BDSM'이라는 특별한 성적 취향을 소재로 한 영화. 이준영은 극 중 완벽한 모습 뒤에 은밀한 취향을 감춘 회사원 정지후 역을 맡아 아찔한 로맨스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소녀시대 출신 서현과 함께 매력적인 연기 변신을 꾀했다.
-'모럴센스'에 대한 반응도 뜨겁더라고요.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는 예상 못 했어요. 집이 강남역 근처인데, 강남역 전광판에 '모럴센스' 티저가 나오더라고요. 이어폰 끼고 아무 생각 없이 뭘 사러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옆에 계신 분이 알아보셔서 좀 부끄러웠어요. '같은 사람 아니에요?'라고 물으시길래, '예 맞습니다' 하고 그 자리를 떴던 기억이 나네요. 마스크도 썼는데 알아보셔서 정말 신기했어요.
-'모럴센스' 출연 계기는?
▶출연 제안이 왔어요. 일단 재밌겠다는 생각이 1번으로 들었죠. 시나리오 자체도 너무 재밌었고요. 배우로서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끓게 해주는 글이었어요.
-소재가 파격적이다 보니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그런 부담은 많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정지후의 성격과 마음을 잘 대변할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은 컸어요. 플레이 신은 항상 회의를 하고 리허설도 많이 해서 부담이 덜 했어요. 정지후의 마음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에 많이 중점을 뒀어요.
-정지후는 어떤 캐릭터라 생각하고 연기했나요?
▶약간 저 같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되게 여리고 조용하고 낯도 많이 가리거든요. 유키스로 데뷔했을 때는 그런 모습들이 많이 금지됐어요. 막내는 밝아야 했거든요. 내가 아닌 모습들로 살아가니까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죠. 그런 부분들이 정지후를 연기하는데 많이 도움이 됐어요.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하고, 그 숨겨야할 때 느꼈던 감정들을 되새겼던 거 같아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유키스 시절엔 뭔가 비타민 막내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네, 제가 막내고, 10대니까 풋풋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제 모습으로 처음부터 임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가끔해요.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그 순간 만큼은 그래도 행복했고, 너무 필요한 시기였고, 그만큼 연기하는데 도움도 됐으니까요.
-서현과 호흡은 어땠나요?
▶동지애가 많이 생겼어요. 같이 리허설 할 시간도 많고 촬영 끝나고 얘기할 시간도 많아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되게 재밌게 잘 찍었어요. 너무 착하고 배려도 잘 해주셨어요. 저보다 선배니까 리드도 많이 해주셨고요.
-처음엔 좀 어색했을 것 같아요.
▶많이 어색했어요. 직속 선배고,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배님 오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했나 봐요. 저는 되게 예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랬는데 그게 되게 불편하셨나 봐요. 원래 그게 제 성격이에요. '다나까'를 많이 써요. 밥을 같이 먹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때 먹었던 맛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선배님이 질문하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계속 바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좀 어색함을 풀었어요?
▶리허설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어요. 둘 다 막 열정적이게 돼서요. 저도 '이건 어떻습니까'라고 의견도 내고, 말이 좀 많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선배님 이건 괜찮습니까'라고 하면 선배님이 '누나라고 불러', '말 편하게 하라'고 하고, 저는 '괜찮아..요?' 하면서 서서히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플레이신에서 강아지 연기가 되게 인상적이었요.
▶영상을 많이 봤어요. 자기 전에 유튜브로 강아지 울음 소리, 짖는 소리, 소형견, 대형견 소리 다 찾아봤죠. 시청각 교육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움직이는 것도 정말 많이 해보고요. 감독님이 후시를 안 하고 현장에서 했던 걸 그대로 쓰셨더라고요. 현장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연기를 하면서 불편한 건 없었나요? 하이힐로 등을 누른다던가...
▶예상외로 없었어요. 리허설을 많이 하다 보니까 본 촬영 때는 불편함이 없었어요. 하이힐 신은 등에 더미 같은 걸 대서 실제론 아프진 않았어요.
-본인이 몰랐던 영역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을 것 같아요.
▶몰랐던 용어들을 처음 알게 됐죠. '아, 이렇게 불리는 구나' 하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특별히 또 참고한 게 있나요?
▶다른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이런 걸 잘 못하는 편이에요. 참고를 하면 어느 순간 제가 그분의 말투까지 따라 하고 있더라고요. '모럴센스'는 원작 웹툰이 있으니까 웹툰을 많이 봤어요. 표정들이 많이 나오는 신들은 빨리 넘기고, 감정신 위주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지후의 마음을 어떻게 더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준영은 본래 가수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감명 깊게 보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준영은 "부모님의 반대로 비보잉은 어려웠고, 팝핀을 시작했다"며 "댄스 배틀 행사도 나가고 그러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면 다 사기인 줄 알고 도망다녔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18세의 나이에 유키스로 데뷔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3년 뒤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에 캐스팅됐고, 엉겁결에 시작한 연기 활동이 이제는 본업이 됐다. "그때는 일이 많이 없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고 신기했어요."
-연기 활동하면서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책의 내용에 따라 프레임 안에서 행동과 말로 표현하는 작업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 글을 제가 대변하는 느낌이 된 거 같았죠. 점점 시간이 지나고 독립영화도 찍어 보고, 웹드라마도 해보니까 제대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유키스 데뷔하고 원래 계획은 뭐였어요?
▶어렸을 땐 대한민국을 씹어먹는 가수가 되고 싶었죠. 유키스가 해체한 건 아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됐으니까 지금은 멤버 형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다시 가수 활동 계획은 있어요?
▶당분간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회사도 새로 시작하는 시기라 책임감도 있고, 제 개인적으로도 연기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가수 활동을 절대 안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 노래 부르는 거 되게 좋아해요.(웃음)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해외 팬 미팅 투어를 돌면서 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네. 계획 중에 있습니다. 기다려주신 팬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은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기자로서 가장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뭘까요?
▶'D.P'인 것 같아요. 액션 자체가 아무래도 처음이었고,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었는데, 다행히 그게 성공했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그 이후에 작품도 많이 들어왔고요. 덕분에 액션 영화도 2개를 찍고 있어요. 뭔가 여태까지의 저를 내려놔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욕도 하고 싸움도 하고 그런 시도들이 되게 재밌었고, 보시는 분들도 신선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아요?
▶지치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안주하는 게 싫어요. 너무 편안해지면 실수도 많이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도 있고,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믿음에 배신하고 싶지 않아요. 책임감이 좀 강한 편이라서요. 1인 기획사를 차린지도 얼마 안 돼서 열심히 발로 뛰면서 해야 해요.
-매 작품 결과물에 대해선 만족하나요.
▶불만족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시청률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청률에만 연연한다면 그 시간에 맞춰서 작품을 봐주시는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 아닌가 생각해요. 시청률을 생각할 시간에 내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차기작 '용감한 시민'은 어떤 작품인지 살짝 귀띔해 준다면.
▶무에타이 선수 출신인데 운동을 그만둔 인물이에요. 원작에서 고등학생으로 나오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2년을 꿇었어요. 21살인데 고3인 학교에 군림하는 악질 나쁜 놈이죠. 직접 사람을 때릴 때도 있긴 한데 주로 제 패거리를 시켜요. 돌아가면서 맘에 안 드는 애를 지정하면서 괴롭히는 거죠. 빌런이에요.
-군 입대는 언제쯤 계획하고 있어요?
▶건강할 때 빨리 다녀오고 싶어요. 군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군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일할 때 말고는 세상 살아가는 걸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온전히 집중할 있을 것 같아요. 뭐가 됐든 군대는 저한테도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도 만나게 되는 거니까 그런 부분도 조금 기대가 돼요. 훈련도 기대가 돼요. 제가 몸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2022년 목표는?
▶지금 제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상하게 변질 안 됐으면 좋겠어요. 더 경각심을 갖고 있는 시기에요.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깨고 싶어요. 물론 그게 나쁜 말만은 아니지만, 그냥 저는 저답게 살고 싶어요. 저는 듣기 좋은 말이 '현장에서 밥 먹으러 제일 먼저 뛰어간다'는 거예요. 스태프들과 그런 걸로 경쟁해요. 스태프들도 이런 배우 처음 봤대요. 인간적이고 좋잖아요. 저는 연예인으로서 꼭 갖춰야 하는 그런 게 갑갑하더라고요. 저는 저답게 사는 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요. 아직 모난 부분이 많지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거든요. 그걸 유지하고 싶어요.
-끝
윤성열 기자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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