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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 몇 개씩 가지고 다녀"..'콘유' 이병헌, CG급 연기 비결[★FULL인터뷰]

  • 김나연 기자
  • 2023-08-12
'연기 잘하는 배우'를 묻는다면, 단번에 고개를 들어 이병헌을 바라볼 터다. 그러나 이병헌은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또 새로운 얼굴을 탄생시켰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의 배우 이병헌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으로 분한 이병헌은 아파트 안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는 '영탁'의 변화를 디테일하고 치밀한 감정선으로 표현해냈다.

친근한 이웃의 소탈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이병헌은 낙폭이 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데 대해 "배우들이 원래 눈알 몇 개를 가지고 다닌다"고 농담했다. 그는 "리더라는 자리가 어색한 사람이고, 정상인 상태가 아니다. 어느순간 주민 대표가 되는 갑작스러운 신분의 변화가 있고, 부녀회장 금애(김선영 분)이 '이 세상이 리셋된 거야'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때 뭔가를 느끼는 장면이 있다. 포커스만 살짝 바꾼 컷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영탁이 심경의 변화를 느낀 것 같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엄태화 감독과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 갔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었고, 그래서 감독과 주요 배우과 생각이 일치돼야 시너지가 나는 거니까 촬영 전에 대화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이 그때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고, 저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서 믿음이 갔다. 저도 전작에 시사회 때도 갔는데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 힘을 믿고 뛰어들었는데 어제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의 노력이 느껴져서 놀라웠다"고 전했다.

이어 "시나리오에 나오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가진 복잡미묘한 감정의 상태를 추측하게 된다"며 "리더의 위치에서 뭔가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고, 많은 사람의 리더로서 이끌게 되면서 즉흥적이고, 혹은 감정적인 판단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과격한 부분도 있고, 그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광기가 생긴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연기를 장르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장르적인 색깔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장르를 떠나서 영화는 그냥 재밌어야 한다. 한 달 전에 제작발표회를 할 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장르를 재난 영화라고 얘기하는데 재난 영화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스릴러가 강한 휴먼 블랙 코미디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색깔로 영화가 나온 것 같다"고 자신했다.

특히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처음 보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를 보는데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싶은 장면이 있었다. 내가 나를 보는데 무섭더라. 'CG(컴퓨터그래픽)인가? 이런 눈빛과 얼굴이 나에게도 있었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후배 배우 박서준, 박보영에 대해서도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그는 "처음 같이 해봤다. 연기 활동을 오래했는데 작업하러 가면 늘 새로운 배우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선남선녀고, 귀엽고, 잘생긴 친구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좀 다른 느낌이 있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박) 서준이는 진짜 건실한 청년 느낌이다. 긴 시간을 봐도 늘 건강한 웃음을 보여주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잘 웃는다. 그러면서 연기할 때는 미묘한 감정을 잘 캐치하고, 캐릭터의 변화를 잘 계산하는 걸 보면 배우로서 예민함과 섬세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으로도, 후배 배우로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소속사 동료이기도 한 박보영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많이 볼 일이 없었다. 작품을 통해서 마주하게 됐는데 저도 박보영 배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과속스캔들'이다.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나중에 끝나고 나서야 저한테 작품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랑 대립하는 장면에서 제가 무서웠다고 하더라. 근데 저야말로 무서웠다"며 "'박보영에게 저런 눈빛이 있었어?'라고 놀랐던 장면이 있는데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한 매번 연기 칭찬을 듣는 이병헌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고. 그는 "특히 극 중 가족들은 소품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만났는데, 지진 이후에 무너진 뒤 가족의 손을 잡고 오열하는 신 같은 경우는 배우들이 연기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막연한 느낌이 들고, 상상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내가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나?' 싶은 순간이 있다"고 털어놓은 그는 "상상에 의존해서 이런 감정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연기하면서도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고, 내가 의도하고, 내가 보여준 감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확신이 없을 때가 있는데 내가 느낀 감정이 맞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면 그게 맞는 경우가 많다"면서 "극단적인 감정은 어쩌면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한 지점이기 때문에 표현이 과하거나, 모자라면 안 되기 때문에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연기해도 보여지기 전에 불안감은 있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센 감정들이 나오는 영화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전에는 부담감이 큰데 다행히도 시사 이후에 그런 감정을 너무 좋게 봐주시니까 불안감이 자신감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병헌은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치고 있다. 저는 외국에 나이 많으신 감독님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 연세에 더 멋있고, 세련된 작품이 탄생할까'라며 감탄하게 된다. 그건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걸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나연 기자 |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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