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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계일주' PD "기안84, 모두가 배탈날 때 꿋꿋한 장지컬"..'늑대인간' 탐구보고서[★창간19]

  • 한해선 기자
  • 2023-08-29

'지금까지 이런 예능인은 없었다. 이 사람은 웹툰 작가인가 방송인인가 늑대인간인가.'

시청자가 TV에서 기안84를 본 지도 벌써 10년이 돼 가지만, 아직 그를 정의할 명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토크형, 몸개그형, 진행형, 먹방형' 등 수많은 예능 캐릭터가 있지만 기안84가 들어갈 카테고리는 없다.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기이한 기안84의 행동 패턴을 좀처럼 읽기 힘들다. 그는 웹툰 작가로 시작해 지금은 예능인으로 자리 잡았고, 심지어 올해 '2023 MBC 방송예능대상' 대상 후보로까지 언급된다. 예능계가 미치도록 소비하고픈 그 마력이 뭘까. 스타뉴스가 창간 19주년을 맞이해 '변종 예능인' 기안84 탐구보고서를 작성해 본다.




◆ '나 혼자 산다'가 발견한 '늑대인간'


'방송인' 기안84의 시작은 MBC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이다. 2016년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기안84는 돌연 상의를 훌러덩 벗고 집 세면대에서 주방 가위로 셀프 이발을 하고 완성된 '오토바이 헬멧컷'에 흡족해했다. 그는 셀프 탈색을 하면서도 수직 샤워를 해 염색약이 눈에 다 들어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기안84는 주로 식탁 없이 바닥에서 식사하기, 남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볶음밥 만들기, 수건과 걸레를 같이 빨고 혼용해 쓰기, 장식할 꽃을 술병에 구겨 넣으며 이파리 다 뜯기 등의 행동으로 모두를 경악케 했다.

위생 관념,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 많았던 탓에 기안84는 방송 초반 비호감 이미지로 비춰졌다. '왠지 친해지면 위험할 것 같은 사람', '기피하고 싶은 사람'이란 인상이 강했는데, 반면 그의 행동이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선 공감되고 웃긴다는 반응으로 터지기도 했다. 보통 방송인들은 불특정 다수에 체면을 차린다고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교양을 떨며 '가짜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마련인데, 기안84는 날것 그대로, 추잡한 면모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주며 '진짜 리얼리티'를 소비하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유발한 것이다.




◆ 제작진의 고민 '날것의 발언, 논란, 구설수'


기안84는 본업인 웹툰 작가일을 겸했기 때문에 재미삼아 잠깐 방송하고 말 인물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방송 문법을 벗어난 캐릭터의 등장에 '나혼산'은 기안84를 무지개회원 정식 멤버로 품었다. 그러던 중 그는 2019년 무렵 과거 웹툰에서의 여성 혐오, 장애인 비하 표현 의혹이 문제 됐고, 시상식에서 정장이 아닌 패딩을 착용하는가 하면 패션쇼장에서 성훈을 큰 소리로 불러 민폐 논란이 생겼다. '나혼산' 게스트에 대한 필터링 없는 표현이 구설에 오르기도 해 기안84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진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나혼산'은 기안84의 진심을 믿고 올해까지도 함께 했다. 당시 제작진은 기안84의 이슈가 '나혼산'에 타격을 입힐 수 있었음에도 기안84를 방송에 이용하겠단 생각보단 그에게 악한 의도가 없었단 진심을 알고 '가족'으로서 의리를 지킨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나혼산'의 인기에 비례해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에 대한 대중의 의견이 과열된 것도 있었다.

당시 '나혼산' 연출자였던 황지영PD는 스타뉴스에 "출연자들도 상처를 많이 받더라. 기안84의 패션쇼 모습 등에 대해 시청자들이 지적하시던데 잘못된 걸 인정하면서도 당사자로서는 무섭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향이 크다 보니 출연진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저희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이슈가 될 때가 있다. 매번 어느 정도까지 검열을 해야할 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 정신 차리고 자중+술 끊고 마라톤+예능 호감 획득 '성장캐'


시청자들도 8년째 기안84를 관찰해 보니 '기안84는 원래 늑대인간 같은 날것의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듯하다. 그의 필터링 없는 발언도 '무례함'보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 '일침'으로 속 시원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역시 여러 구설을 겪으면서 스스로 자중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오히려 초반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일까. 그의 최근 행보가 '성장캐'라 극찬을 이끌어내기도. 일주일에 거의 매일 소주를 마시며 알코올 의존을 보였던 기안84가 한 달간 술을 끊고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게다가 기안84는 올해 론칭한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태계일주)'에서 따뜻한 면모를 보여 의외의 호감을 샀다. 그는 남미, 인도를 여행하며 편견 없이 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고 현지인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소통했다. 아무리 오픈 마인드여도 감히 누가 갠지스 강물을 떠마시고 우유니 마을 소금기를 확인하느라 시멘트 바닥을 '찍먹'하겠나. 덱스, 빠니보틀에게는 믿음직스럽진 않더라도 듬직한 형의 역할도 했다.

'태계일주' 김지우PD는 스타뉴스에 기안84의 촬영 비하인드 에피소드로 "기안84는'태계일주2' 촬영 기간 동안 모든 스태프 및 다른 출연자들이 돌아가며 배탈이 나거나 물갈이로 고생할 때도 누구보다 건강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홀로 꿋꿋한 장지컬(?)을 보여줬을 때 놀랐다"고 전했다.

또 김PD는 자신이 느낀 기안84의 매력에 대해선 "일상이 늘 재미있고 지켜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도 기안이 한다면 집중하게 만들고 그의 주변에선 예상치 못한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는 매력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우리가 소비할 기안84의 예능적 기술


10년 가깝게 한결같이 '기인'이면 이것도 콘셉트가 아니라 '진짜'라고 인정해 줘야 한다. 기안84는 여전히 예상을 벗어나지만 남을 해하거나 악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오히려 그의 행동이 우리들에겐 '거울치료', '타산지석'이 되는 효과가 있달까. 기안84가 올해 '태계일주'를 한 건 대중을 향해서도, 자신의 인생에서도 긍정적인 전환점이 된 게 맞아 보인다. 우리가 몰랐던 이면의 이면, 또 이면의 이면이 수두룩했다. 같은 여행지라도 기안84가 다니면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갈수록 예능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소비 형태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는데, 기안84는 이번 주도 예측 불가의 일을 벌일 것으로 충분히 전망된다. 그게 기안84의 가장 큰 장점이지 싶다. 또 그는 만화가로서의 연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예능 중 극적으로 살릴 포인트를 잘 알고 말한다. 그의 능력치는 여행 예능에서 최대로 발현되는데, 시각적으로도 각 도시의 건축양식이나 생활상의 차이점을 기민하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태어난 김에 사는 자세'로 낯선 미지의 공간에서 상상 초월의 적응력을 보이는 것도 여행 예능 안에서의 장점이다. 무식하지만 용감한 것 역시 예능에서 써먹기 좋은 소스인데, 기안84가 '하우 데얼'(어딜 감히), '부따 섀끼뭐니',(붓다 석가모니) 등 말도 안 되는 콩글리시를 자신감 있게 말하면서도 인도 현지인들과 의외로 소통이 돼 폭소를 만든다.
한해선 기자 |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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