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47년의 감동이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배우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완성된 '1947 보스톤'이다.

11일 서울시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의 언론배급시사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하정우, 임시완, 김상호가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

'쉬리'를 통해 '첩보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한국 전쟁영화를 대표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로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강제규 감독이 대한민국 최초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돌아왔다.

그는 "제가 한 작품 중애 시대물이 많더라. 정확한 분기점은 모르겠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를 하고 SF물을 준비하다가 그 영화는 무산이 되고 다른 영화를 했다"며 "근데 어느 순간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모습을 잘 들여다 보는 일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발자취를 조금 더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의 전차'라는 영화를 보고 달리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고, 언젠가는 꼭 달리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손기정, 서윤복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주는 매력이 크다. 아무런 장비와 도구 없이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토너의 마음, 동작이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고, 도전과 열정에 가장 걸맞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정우가 1947년 보스턴의 기적을 이끄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 역을 맡아 중심을 잡는다. 그는 "캐릭터를 맡으면 저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손기정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알아갔다. 손기정 선생님은 이 상황에 어떤 마음이셨을지, 어떤 감정을 가지셨을지 고민하면서 임했다.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니까 첫 장면에서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 장면이 나오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영화 세트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웠던 부분이 있고, 한 번도 촬영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엄숙함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임시완 배우와 한 화면에 잡혔을 때 '내가 나이가 찼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그 외에는 특별한 건 없었다. 손기정 선생님이 실제 선수단을 이끌고 보스톤 대회 여정길에 오르셨을 때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태극기를 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촬영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임시완과 첫 호흡에 대해서는 "(임) 시완이가 많이 노력하고, 실제 운동선수 같았다. 이 영화를 위해, 또 서윤복 선생님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대회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왔다. 보스톤 대회 대부분을 멜버른 근처에서 찍었는데 마침 영화 후반 촬영이어서 감정이 충만한 상태로 그 신에 임했다. 오늘 완성본을 봤는데 임시완 배우가 너무 훌륭하게 표현해줘서 故 서윤복 선생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시완은 "하정우 형과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든든한 형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촬영하면서도 의지를 많이 했고, 여러 방면에서 저보다 많은 세계를 알고 계시고, 또 형님이 말씀하시는 게 재밌다. 순간순간 어떤 예상치 못한 웃음 포인트가 나올지 기대하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이렇듯 임시완이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불굴의 마라토너 '서윤복' 역에 도전한다. 1940년대의 마라토너로 완벽 변신하기 위해 실제 선수들의 훈련량 6~70%를 소화하며 체지방을 6%까지 낮추고 꾸준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등 강도 높은 준비 과정을 거쳤다.

그는 '서윤복' 역을 맡은 것에 대해 "실존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분께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 작품에 임했다"며 "서윤복 선수가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갔다. 제가 이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에 분하는 것이긴 하지만, 작품을 찍을 때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식단과 운동을 병행했다. 촬영을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달고 살았다. 운동도 매일 해야 했고, 근육이 계속 탄탄해 보여야 해서 운동을 계속했다. 최대한 서윤복 선수의 외형과 비슷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체지방을 쟀더니 6%가 나오더라. 제 인생 최초로 그 숫자를 보고 신기해했다"면서 "또한 달리기가 전문적으로 보여져야 해서 작품 두세달 전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했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또 촬영 중간중간 코치님께 틈틈이 배우며 훈련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상호가 국가대표팀의 든든한 지원군 '백남현' 역을 맡았다. 통역부터 훈련지원, 교통편과 숙식 제공까지 미국 보스턴 현지 코디네이터로 활약하며 극에 유쾌한 활력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시절 머나먼 타지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교민이 조국에 느낄 수 있는 양가적인 감정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김상호는 '백남현'의 실존 인물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면서 "배우들은 상상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많은 자료가 없는 게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제가 대본을 받아보고 재밌겠다고 느꼈던 부분은 그분이 도와주셨지만, 맹목적인 도움은 아니라는 거다. 그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그 시대에 살았던 개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강제규 감독은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하정우 배우와 촬영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해서 또 동시의 자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시나리오상에서는 같이 달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마라톤 구간을 촬영할 때 달리는 사람은 물론 그것을 애타게 쳐다보는 장면도 중요한데 감독(손기정) 입장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어떨지,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정우가 좋은 아이디어도 주고, 덕분에 좀 더 만족하는 장면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설정했던 손기정 캐릭터는 조금 마초 같고,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강하고, 엄격한 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남승룡(배성우 분)은 선배로서 조금 더 엄마 같은 역할이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세 사람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거 이야기는 고리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역사 속에 담겨진 좋은 이야기, 훌륭한 분들이 많다.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나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그런 부분에서 젊은 관객들에게 한 번쯤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도 되고 용기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