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의 연출을 맡은 강제규 감독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
'쉬리'를 통해 '첩보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한국 전쟁영화를 대표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로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강제규 감독이 대한민국 최초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돌아왔다.
강제규 감독은 "'장수상회'가 끝나고 중국 쪽과 몇 작품을 준비하다가 한한령 때문에 2~3년 정도 그냥 지나갔고, 2018년부터 '1947 보스톤' 대본을 받고, 준비했다"며 "'1947 보스톤'도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는데 사실 이렇게까지 밀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다 보니까 지쳐서 이제는 긴장보다는 빨리 개봉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제규 감독은 코로나19로 개봉을 기다렸던 순간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그는 "후반 작업을 2년 넘게 할 수 있었다는 건 굉장히 큰 축복이었다. 항상 영화를 만들고 나면 제 영화를 보고, 안 좋은 것만 보인다"며 "제 영화를 가장 재미없게 보는 감독 중 한 명인데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있다 보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동안은 후회도 많고, 아쉬운 지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개봉이 늦어졌지만 그런 점은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 소재 영화의 첫 연출을 맡은 강제규 감독은 "그동안 액션 장르를 많이 했고, '태극기 휘날리며'나 '마이웨이'는 전투 장면이 있어서 촬영의 난도가 높았다. 초긴장 상태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는 마라톤 촬영은 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근데 막상 찍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사실은 전투나 전쟁 장면을 촬영할 때는 통제 속에 찍기 때문에 쉬운데 이건 길 위에서 찍어야 하다 보니까 시간에 좇기는 느낌이 들었다. 한 도시의 도로를 9시부터 12시까지 전면 통제했는데 세 시간밖에 찍을 수가 없다. 당시에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단 1분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달리기를 찍는 게 힘들더라"라고 토로했다.
가장 중점에 둔 부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강제규 감독은 "어떻게 사실에 근접해서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도 가급적 픽션을 제외하고 실제 이야기를 충실히 담는 데 신경을 썼다"며 "개가 튀어나오는 장면도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빼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다. 저도 굉장히 흔들렸지만, 실화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까 당당하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하지 않고, 그 시대에 녹아들어 놀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흡입력이 대단했다. 임시완에게는 군소리, 잔소리가 필요없었다. 디테일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보내고, 저도 수정해서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강제규 감독은 임시완에게 "우리 영화의 운명이 네 발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고. 그는 "'네가 진짜 마라토너 서윤복이 돼야 관객들이 몰입해서 볼 수 있다. 네가 마라토너처럼 보이지 않으면 이 영화는 망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진짜 독하더라"라며 "몸 노출되는 장면을 찍을 때까지는 닭가슴살, 샐러드만 먹었다. 저한테 웃통을 까고 보여주면 제가 그만해도 된다고 해도 조금만 더 해야 한다고 하더라. 서윤복이라는 선수가 타고난 체격을 가지고 있는데 시완이가 그런 근육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수개월 간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그 근육을 완성해 뛰니까 진짜 마라토너 같고 좋더라"라고 칭찬했다.
가장 먼저 캐스팅한 것은 하정우였다. 강제규 감독은 "우리나라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많다. 대학 후배이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볼 때마다 '우리 언제 같이 일해요?'라는 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사실 '1947 보스톤'의 대본을 받고 나서 제가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래서 손기정 선생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르겠지만 성격도, 외형적으로도 닮은 곳이 많았다. 근데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일이 닥치니까 많이 힘들더라. 후반 작업을 할 때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 그러면 영화를 엎거나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이 개봉이 연기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 셈"이라며 "솔직히 지난해 가을쯤에는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직은 관객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시간이 좀 더 지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성우와 첫 제작보고회 하기 전날 한 시간 넘게 통화했다. 본인도 너무 힘들어하고, 죄송해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강제규 감독은 '1947 보스톤'으로 돌아와 "사실 부담감 때문에 많은 작품을 못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끝내고 나서는 내가 한국 영화에 더욱 도움이 되고, 일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미국에도 갔고, 4년 동안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모든 운이 다 따라주는 것은 아니더라. 큰 뜻을 가지고 갔었는데 CAA에 소속이 됐었고, 에이전트가 감독 제안을 준 게 40편 정도 됐다. 근데 그걸 한 편도 안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며 "SF 영화를 만들기 위해 좋은 제안을 다 거절하고, 소중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장수상회' 이후에 조금 추스르고 큰 영화를 하려고 중국 측과 제작비가 900억 정도 되는 영화를 준비했는데 한한령으로 무산됐다"고 털어놨다.
강제규 감독은 "한국 영화가 어려운 시기에 영화를 시작했는데 지금 한국 영화는 큰 성장을 이뤘고, 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또 보람을 느낀다"며 "정말 제 자식이 잘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근데 코로나19 이후 많은 환경 변화가 생기고, 한국 영화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늘 위기는 있었으니까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관객들의 높아진 문턱을 우리가 넘어야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숙제이자 과제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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