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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감독 "매력적 악당 경계..틈 없는 황정민 덕분 안도"[★FULL인터뷰]

  • 김나연 기자
  • 2023-11-25
19살 무렵 경험한 그 순간, 의도를 알 수 없던 총소리는 김성수 감독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44년 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숙제에 대한 답은 영화 '서울의 봄'으로 탄생됐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서울의 봄'의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과 인터뷰를 나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첫 영화인 '서울의 봄'은 '비트', '태양은 없다', '감기', '아수라' 등 선 굵은 영화를 만들어 온 김성수 감독의 연출작이다.

이날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을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아수라' 이후 작품을 준비하다가 잘 안 됐다. 2019년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고,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제가 어렸을 때 한남동에서 참모총장이 납치된 과정 속 총격전을 들었던 뜨거운 기억이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고 전율이 오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근데 막상 연출할 자신은 없었다. 시나리오가 좋았지만, 전두환 위주였고, 지금의 이태신(정우성 분)의 역할이 작았다. 재밌었지만, 잘못 만들면 반란군의 승리의 기록처럼 보이고, 악당인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취지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서울의 봄'이라는 매력적인 시나리오는 계속해서 김성수 감독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시나리오를 본 이후로는 거기에 갇혀서 도망가지 못했다. 그리고 한 10개월 지났을 때 용기가 생기더라. 2020년 여름쯤이었는데 영화 촬영을 준비할 때 전두환이 사망했다. 이 영화가 한 사람을 겨냥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일, 그 사람이 나빴다는 단편적인 얘기보다 나름대로 시의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전두광'이라는 가명으로 이름을 바꾸는 순간 자유로워졌다. 더 주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고, 재밌게 쓸 수 있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캐스팅에 있어서 신군부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다는 김성수 감독은 "영화 보시는 분들은 화가 날지도 모르지만, 훌륭한 분들이 모여서 연기를 잘해주셨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특히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는 불처럼 강렬했고, '인생 연기'라는 평을 받고 있기도.

김성수 감독은 "황정민 때문에 그 사람(전두환)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 영화 속의 악당은 기본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매력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모이지 않는다. 근데 이 영화의 두목은 매력적이면 안 된다. 그럼 이 영화를 만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그 부분이 고민이었고, 예의주시하면서 연출했는데 (황) 정민 씨가 연기하는 걸 보는 순간 마음을 놨다"고 밝혔다.

이어 "심지어 전두광(황정민 분)의 자택에서 신군부 세력이 모여서 거사를 도모하는 장면이 있다. 장소가 내실이기 때문에 가족사진이 많이 걸려있어서 다양한 종류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근데 황정민이 웃는 사진이 없더라. 왜 안 웃었냐고 물어보니까 '전두광은 그런 모습 없어요'라고 하더라. 그 말만 했는데도 제가 알아들었다. 인간미가 보일 만한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은 "황정민의 연기를 보고, '경지에 도달한 배우는 저런 것도 차단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현장에서도 전두광의 모습으로 앉아있더라"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되 그 사람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12.12 사태가 그 사람이 일으킨 거고, 거대한 욕망에 동조한 엘리트 군인들의 탐욕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나라를 망가뜨린 거다. 그 상징성만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자기 모습으로 나와서 '나는 그 사람이야'라고 하는 배우가 있고, 어떤 배우들은 자기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역사 속의 그 사람으로 나타나서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근데 황정민은 후자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그는 "(황정민이) 영화를 보고 나서 헤어 나오지 못하더라. 전두광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느낀 아픔이나 속상함이 컸던 것 같다"며 "좋은 영화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고, 저도 좋은 연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 둘 사이에 그런 말 안 하는데 진심으로 그런 말을 주고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두광과 대적하는 이태신 역의 정우성에 대해서는 "실존 인물은 불같은 분인데 제가 캐릭터를 바꾸고, 이름도 바꾸면서는 활화산 같은 '전두광'에 비해 혼자 외롭게 남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혼자 남아도 흔들림 없고, 지조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이었으면 했다"며 "요즘 관객들이 볼 때도 마초 같고, 크게 소리 지르는 강력한 리더보다는 오히려 이런 사람이 더 설득력 있고, 믿음이 가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또 실제 정우성 씨가 그런 사람이다. 남한테 화내거나 훈계하는 것도 없는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우성 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고쳤다. '헌트' 때문에 망설이길래 한다고 할 때까지 계속 괴롭혔다"고 덧붙였다. 또 정우성의 멋진 비주얼이 돋보인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제가 '헌트'의 이정재 감독한테 지면 안 된다"고 농담해 웃음을 안겼다.

또한 정우성과 작업 과정에 대해서는 "연기는 배우가 90% 하는 거지만, 감독도 함께 만들어가는 거다. 우성 씨와 저는 협업하는 느낌이 강하다. 저와 함께 일할 때는 아이디어도 많이 낸다. '서울의 봄' 때도 초반부에는 좀 그랬는데 중후반부 고립화될 때 고독할 정도로 외롭다고 하더라"라며 "저는 '당신은 그렇게 느껴야 해. 그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저는 정우성이 외로움을 잘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자꾸 낭떠러지에 떠밀리면서도 거기에 서 있어야만 하는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서 얘기했는데 정우성은 '왜 내 평상시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냐. 나로부터 출발해서 '이태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나고 있는데 자꾸 실제 모습을 투영하라는 디렉션이 어렵다'고 불만을 표시하더라. 사실 냉랭한 분위기가 유지되기도 했는데 철저히 고립되고, 혼자가 된 모습으로 연기하는 데 감탄이 나왔고, 마지막에는 진짜 '이태신'처럼 보이더라"라며 "지금은 사이가 좋다"고 웃었다.

'서울의 봄'을 연출하며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는 김성수 감독은 "제가 그 총격전을 목격했던 43년 전으로 소환돼 거기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다. 이렇게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영화 못 찍으면 평생 욕먹을 거라는 생각에 부담이 컸는데 영화 마무리 짓고,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영화 좋다고 해주니까 조금 마음이 놓이는 건 있다"며 "그래도 제 야망이자 원대한 포부는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40대 중반, 50대는 이 영화에 흥미가 있을 것 같다. 젊은 분들은 영화를 보고 재밌으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기니까 실제 사건, 실존 인물을 더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김나연 기자 |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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