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채와 장현의 청보리밭 키스신은 미장센이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었죠.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습니다. 노랑과 청록은 팔레트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컬러라 어느 시점에 사용할지 아껴둔 컬러였어요. 마침 청보리 밭이 장소로 선택돼 사진으로 받았는데, 설익은 풋사과 같은 길채의 모습, 그 소녀의 첫 키스의 설렘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생각됐죠."
MBC '연인'(작가 황진영, 감독 김성용) 이 시청자에게 가히 '명작 드라마'라고 극찬받은 데에는 극의 미장센이 큰 작용을 했다. 그 미장센 중 사극에선 '한복 의상'이 또 큰 비중을 차지한 바. 이진희 의상감독의 치밀한 계산과 연출에 따라 '연인' 속 길채와 장현의 '청보리밭 키스신', 웅장한 역사고증과 섬세한 감수성 모두 명장면으로 남을 수 있었다.
'연인'이 지난달 21부작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 그 아름다운 장면 장면은 아직까지도 시청자의 뇌리에서 영 떠날 줄 모른다. 병자호란의 전란, 조선, 청의 국가를 넘나든 배경, 두 나라의 왕조와 민초, 겨울부터 다시 봄, 여름, 가을, 또 겨울이 다 담긴 사계절 등 스케일과 디테일이 역대급으로 까다로운 상황이었지만 이진희 감독은 수십 년의 작품 경력과 뛰어난 안목으로 이 모든 조건을 다 소화했다.
이진희 감독은 한예종 무대미술 전공을 한 후 현재 한예종 무대미술과 교수로 재직 중인 뼛속 깊은 전공자로, 1998년 대학로에서 공연 디자이너로 데뷔해 25년 간 다양한 작품을 디자인했다. 이진희 감독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더 킹 : 영원의 군주', 영화 '화장', '간신', '안시성', '일장춘몽' 등 걸출한 작품의 의상감독으로 활약했고, 드라마 '하얀거탑',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유명 현대물에도 의상감독으로 참여했다.
이진희 감독은 이뿐만 아니라 국립국악원 공연 '붉은 선비', 국립창극단 공연 '춘향', 2019년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폐막식,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개·폐막식 등 전통공연과 국가행사의 의상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 제 56회 대종상 영화제에선 '안시성'으로 의상상을 수상했고, 2022년 한복진흥문화유공자 문화부장관 표창을 받을만큼 이미 '연인' 이전부터 명성이 높은 감독이다. 그는 내년 1월 25일 예정된 '연인' 의상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스타뉴스가 이진희 의상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연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연인'이 11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종영했습니다. 긴 호흡의 드라마라 종영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네, 저뿐만 아니라 워낙에 모든 팀이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계절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와 질감, 계절에 맞는 선형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이면서도 계절감이 두드러지는 건 겨울 의상입니다. 인조 즉위 후 잇따른 흉년과 병자호란, 전쟁의 혼란 속에서 궁핍한 민초들의 삶을 척박한 질감과 색감으로 생동감 있게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해서 드라마에서 흔히 봐오던,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의상이 아닌 생활감과 디테일에 집중했습니다. 소재 또한 삼베, 모시, 무명 등의 덤덤한 자연 소재를 많이 사용했고, 양반들의 겨울옷은 실크 누비가 아닌 무명을 겉으로 누비고 실크를 안감으로 사용해 사실적인 느낌을 더했습니다. 이런 디테일 들이 연출의 섬세함과 촬영의 미장센과 잘 어우러져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고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 같아요. 고생은 많이 했지만 많은 것을 얻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길채, 장현부터 연준, 은애, 량음 등 정말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각 캐릭터의 의상은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고 제작했나요?
▶장현: 극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라 컬러를 선택하고 컨셉을 잡는데 가장 심사숙고했습니다. 극에서 가장 입체적이면서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무게감이 있지만 다채롭고 입체적인 표현이 필요해서 색상을 염색하고 원단을 고르는데 가장 공을 들인 캐릭터입니다. 해서 남궁민 배우에게 맞춰서 주름 잡힌 풍성한 도포를 디자인했고, 깊이와 활동성을 모두 표현하기 위해 도포에 철릭을 결합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색은 주로 깊고 강한 색을 레이어드해 입체감과 섹시함을 강조하려고 하였습니다. 배우분도 장현의 의상을 매우 만족해하셨고, 남궁민 배우님도 옷을 입으면 힘이 난다는 얘기를 해주셨을 때 매우 뿌듯했습니다. 극의 캐릭터와도 잘 붙어서 저 또한 만족감이 큰 의상입니다.
▶길채: 길채의 성장과 여정을 4계절의 색상으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연인'에서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 길채였습니다. 이 작품은 길채의 성장을 통해 참 사랑을 찾고, 참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길채의 성장 여정을 4계절의 색으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전쟁 전 봄은 마치 꽃과 나비처럼 화사하고 생명력이 넘치죠.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는 겨울은 하얀색 누비 두루마기로 설원의 풍경 색과 같아요. 마치 모든 게 얼어붙은 전쟁의 긴장감으로 시작해서 흰옷들이 흙에 뒹굴며 회색으로 변해갔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현을 찾아가는 마지막 장면의 의상은 농익은 가을 낙엽처럼 깊고 붉은색으로 표현했어요. 대게 드라마에선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배경과 대비되는 색을 주로 쓰지만, 이번 작업은 촬영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찍으셨던 분이라 자연색과 동화되게 잘 찍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해서 예상대로 잘 어우러지게 나온 것 같아요.
▶연준: 연준 도령은 학문적으로는 박식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미숙한 부분이 많고, 융통성이 없는 완고한 군자 스타일이라 의상의 컬러는 옥색, 소색등 은은하고 점잖은 미색 컬러를 주로 사용했어요.
▶은혜: 은혜는 현숙한 조선 사대부 여인의 표본이고 차분하고 지혜로운 캐릭터라 맑고 단아하고 차분한 선과 색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량음: 량음은 춤꾼이자 소리꾼이며 조선 최고의 예인입니다. 섬세하고 비밀스러우며 삶에 애환이 있는 천상 예인입니다. 해서 계급과 상관없이 디자인의 선택 범위가 좀 더 확장될 수 있었고, 고증이 아닌 창작으로 실루엣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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