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만으로도 강렬한 임팩트다. '살인자ㅇ난감'의 이희준이 또 한번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놀라운 존재감을 과시했다. "오로지 연기 생각밖에 안 하고, 연기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라며 드러낸 연기 열정은 이희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16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의 이희준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와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이희준은 전직 형사였던 과거 송촌이 지닌 딜레마와, 세월이 흐른 뒤 이탕(최우식 분)과 장난감(손석구 분)를 쫓는 추격자가 되어 버린 송촌의 간극을 디테일한 캐릭터 분석과 노련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

결과적으로 이희준은 선과 악의 경계선에 서서 무자비한 악행을 저지르는 송촌으로 완벽히 변신했고, '살인자ㅇ난감'의 후반부를 책임지는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이날 이희준은 '살인자ㅇ난감' 공개 이후 반응에 대해 "사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잘 체감하지 못했다"며 "근데 감동적이었던 건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들이나 저와 가까운 배우들이 잘 봤다고 연락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 특히 김성수 감독님이 (송촌은)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연기 스타일이라고 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어떤 감독님의 칭찬마다 감동적이었던 건 제가 한예종을 다닐 때 교수님을 잠깐 하셨고, 제가 그 수업의 반장이었다.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고, 제가 2학년인데도 씨네21에 촉망받는 배우로 저를 추천해 주셨다. 너무 존경하고, 감사하는 분인데 저를 칭찬하는 문자를 보내주시니까 감사했다"고 전했다.

이희준은 송촌 역을 제안받았을 때 황당하고도, 신났다고. 그는 "저는 도전과 어려움을 즐기고, 흥분감을 느낀다. '남산의 부장들' 때도 '제가 이 역할을요?'라고 되물었었는데 '살인자ㅇ난감'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면서 신이 난다. 지나고 나면 그런 제안을 주시는 감독님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걸 저한테서 발견하고, 새로운 역할을 제안해 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희준은 캐릭터 해석에 대해 "65세 정도의 약수터에 몸 좋은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생각했다. 특히 송촌은 짠한 기분이 많이 들더라.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했고, 안타깝다는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굳어진 생각을 바꾸기고 힘들 거다. 송촌이라면 이탕 같은 능력을 갖춘 애가 나타났다는 걸 듣고 나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만나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빌런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한 적은 없다. 그만의 이유가 있는 똑같은 사람인 거다. 아버지만큼 믿었던 선배 형사에 대한 배신감이 컸을 것 같다. 청소부가 돼서 '쓰레기들이 한 명이라도 없어져야 한다'라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기하는 데 있어서는 분장의 힘을 얻기도 했다. 매번 특수분장을 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고, 지우는 데는 한 시간 걸렸다. 분장팀이 고생이 많으셨다. 분장이 얇은 실리콘으로 근육 결마다 다르게 피스를 붙여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했었다. 제 근육도 다 연구해 오시고, 굉장히 공들인 분장이었다"고 분장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희준이 고마운 마음을 전한 이들은 또 있었다. 바로 '살인자ㅇ난감'애서 호흡을 맞춘 배우 최우식, 손석구다. 그는 "촬영장에서 다들 피곤하고, 힘들 때 (최) 우식 배우가 재치 있는 농담을 많이 해준다. 현장 분위기도 재밌게 만들어줘서 항상 우식이 덕분에 즐거웠다. (손) 석구는 정말 진지하다. 제가 연기하고 나면 옆에 와서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목소리는 어떻게 바꾸는 거예요?'라고 질문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연극을 하면서도 후배들과 연기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답한다. 근데 '살인자ㅇ난감' 촬영 때도 두 배우가 질문을 많이 해서 대답을 열심히 하다가 촬영이 힘들었다"며 "한 번은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서 의자를 가지고 멀리 가서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데, 우식이가 '무슨 음악 듣는 거예요?' 라고 또 물어보더라. 극의 분위기랑 비슷해서 듣고 있다고 하니까 궁금해해서 이어폰 한쪽을 나눠 낀 적도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지나고 보면 너무 고맙다. 저랑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도 않는데, 나를 좋아해주고, 존경해주는 게 고맙지 않다. 사실 저도 그 친구들을 존경한다.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질투 나기도 하고. 우리는 서로 건강하게 질투하는 관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최우식과 손석구에 대한 연기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이희준은 "우식이가 표현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어려운 역할을 연민을 느낄 만큼 멋있게 표현한 것 같다. 석구는 목욕탕에서 맡을 수 있는 진한 남자 스킨 냄새가 난다. '저걸 어떻게 하지? 저건 그냥 호르몬인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러워지더라. 혼자서 석구의 연기를 따라해 보기도 했다. 배우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배우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라고 칭찬했다.

이희준의 머릿속은 연기 말고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다. 그의 연기 열정에 주변 지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재밌어하냐"라고 혀를 내두른다. 이희준은 "제가 연기 생각밖에 안 한다.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과 불안함에 공황장애도 생겼다. 연기를 그만둘까 싶은 정도로 공황장애가 심해져서 법륜스님한테 찾아갔는데, 스님한테 위안을 얻고 그때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게 영화 '병원의 하루'다. 연기에 몰입해야 하지만, 가끔은 벗어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한석규 선배님이 '너도 연기만 주구장창 생각하는 애지? 나도 낚시나 이런 걸 하는데 그런 거 없으면 큰일 난다'고 하셨다. 저도 찾고 있고, 그림도 그리고 있지만 쉽지 않다. 연기만큼 재밌는 게 없다"면서 "사실 공황장애는 완치가 안 되는 거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심해진다. 그냥 '잘하고 싶구나?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희준은 여전히 심장이 뛰는 작품을 기다린다. 그는 "저는 제가 재밌는 작품을 한다. 연기가 재밌는 건,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반응하지 않나. 사람 심리에 대해 이해를 할수록 너무 재밌어서 (연기에) 꽂혀있는 것 같다. 저에게 아직 연기보다 재밌는 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