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한 한): 몹시 억울하거나 원통하여 원망스럽게 생각하다.
요즘 아이돌의 완결 요소로 한국 고유의 정서 '한(恨)'이 심심찮게 꼽히고 있다. '한'을 품고 '독기' 가득해진 아이돌이 '흑화'하는 위기 극복의 서사가 콘셉트로나 음악적인 형태에서 매력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이러한 서사는 가수와 팬을 결속시키고 팬덤을 확장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도전', '극복', '성장',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르세라핌이다. 르세라핌은 그룹명부터 'IM FEARLESS'를 애너그램 방식으로 만들어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보여줬다. 르세라핌은 데뷔 초부터 학교폭력 논란이 있던 멤버 김가람이 탈퇴하는 과정을 겪으며 험난하게 출발했는데, 자칫 그룹 전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어 쓸 수 있었던 상황에서 고된 트레이닝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LE SSERAFIM - The World Is My Oyster'를 유튜브에 공개하고 허심탄회하게 팬들에게 다가섰다.
다큐멘터리에는 르세라핌 멤버들이 데뷔하기까지 혹독한 훈련을 받고 쓴소리를 들으며 엄격한 자기관리와 멘탈을 다잡고 데뷔하는 과정이 담겼다. 멤버들의 진심어린 땀과 눈물에 많은 대중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고 르세라핌은 팬덤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르세라핌은 데뷔곡 'FEARLESS'(피어리스)에서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겸손한 연기 같은 건 더 이상 안 해'라는 가사와 함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드러냈고, 'ANTIFRAGILE'(안티프레자일)에서 힘든 시간도 성장을 위한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더 단단해지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UNFORGIVEN'(언포기븐)에선 '난 금기를 겨눠', '내 style로 livin' livin' livin''이라며 세상이 정한 룰에서 벗어나 르세라핌 만의 길을 가겠단 야망을 보여줬고, 'EASY'(이지)에선 '쉽지 않음 내가 쉽게 easy'라며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것도 우리가 모두 쉽게 만들어 보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르세라핌의 이번 세 번째 미니앨범 'EASY' 컴백 트레일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멤버들이 어두운 길, 지하를 거칠게 걸어나가고 사쿠라가 눈의 레이저로 벽을 뚫고 코피를 흘리지만 비릿하게 웃어보이는 모습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또 한번 강조했다.
(여자)아이들은 데뷔 초보다 년차가 쌓인 지금 더 한을 많이 먹었다. (여자)아이들은 2018년 데뷔 때부터 'LATATA'(라타타), '한', 'Senorita'(세뇨리타), 'Oh my god'(오 마이 갓), 'DUMDi DUMDi'(덤디덤디), '화(火花)' 등을 통해 '나'라는 자아의 중요성, 사랑 앞의 당당함, 이별의 아픔을 태우고 꽃으로 승화시키는 스토리를 콘셉추얼하게 보여왔다.
(여자)아이들은 지금껏 리더 전소연이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독창적이고 적극적이게 변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다 '화' 이후 2021년 멤버 수진이 학폭 논란으로 그룹에서 탈퇴하게 됐고, (여자)아이들은 데뷔 3년 만에 암초를 만났다. 수진이 그룹 내에서 인기와 케미를 적잖이 담당해 (여자)아이들의 정체성이 흔들릴 위기였다.
위기를 타파할 기회로, 다음 해에 전소연은 정규 1집 제목부터 강렬하게 'I NEVER DIE'(아이 네버 다이)라고 짓고 타이틀곡 'TOMBOY'(톰보이)를 내놓으며 제대로 흑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TOMBOY'는 '미친 연이라 말해', '사정없이 까보라고', '너의 썩은 내 나는 향수나 뿌릴 바엔', 'fxxking' 등 센 단어와 문장의 나열, 거친 사운드로 당당한 애티튜드를 과시했다. 콘셉트가 셌을지언정 (여자)아이들은 그룹 이슈를 넘어 대중을 노래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여자)아이들의 '챕터2'를 열었다.
이후엔 대중과 유쾌한 찬반토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Nxde'(누드)에선 '실례합니다 여기 계신 모두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아리따운 나의 nude 아름다운 나의 nude I'm born nude 변태는 너야 Rude, Nude'라며 '누드'를 외설적인 설정으로 기대한 대중에 '사실 누드는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꼬아 반전의 쾌감을 선사했다.
'퀸카 (Queencard)'는 이제 누군가의 퀸카가 되지 않아도 진짜 퀸카가 될 수 있는 '나'를 찾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번 정규 2집 '2'의 타이틀곡 'Wife'(와이프)와 'Super Lady'(슈퍼 레이디)는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상을 과감하게 타파한 멋있는 여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Super Lady'가 '100이면 100이 다 기절한 각성에 겁먹은 Devil 그래 뵈는 게 없거든 Do you know?', '불길이 다 번져도 그 어떤 놈보다 멋지게 (누구보다 멋지게) 뛰어들 테지 더 뜨겁게 독하다 해 That's my name I never bow on my way'란 가사를 보여줬던 반면, 'Wife'는 '위에 체리도 따먹어줘 조심스레 키스하고 과감하게 먹어치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Chop, chop, chop 배웠으면 이제 너도 한번 올라타봐', '만약 잘한다면 멋진 노래도 부르고 물만난 인어처럼 예쁜 춤도 춰줄 거야'란 표현으로 선정성 논란이 있었다. 'Wife'가 'Super Lady'의 메시지를 강조할 전초전이었다고는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TOMBOY'부터 뜻밖의 '초통령'이 된 터라 무의식에 따라부를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표면적인 가사 수위에 아무래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을 먹고 독기를 풀충전하는 방식 또한 아티스트의 서사임을 이해하나,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자극성을 조절해야 하는 딜레마도 공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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