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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전문' 김준배의 새로운 얼굴, 알을 깨고 날개를 펴다 [★FULL인터뷰]

  • 윤성열 기자
  • 2024-03-17
배우 김준배(55)는 '악역 전문'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큰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 때문에 평소에도 괜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연쇄살인마, 조직폭력배 등등... 그동안 그가 맡았던 역할도 살벌함 그 자체다. 그런 그에게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김한솔·서용수)의 소배압은 연기 커리어의 큰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였다.

김준배는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고려거란전쟁'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고려거란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 분)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 분)의 이야기.

그는 이번 작품에서 거란군의 총사령관 소배압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소배압은 군용병술과 정치력을 모두 겸비한 전쟁 베테랑으로, 송나라를 고전 시킨 공포의 대상이자 거란의 주요 영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 방영 내내 '고려 영웅' 강감찬 역을 맡은 배우 최수종과 팽팽하게 대립하며 극을 이끌었다. 비록 귀주대첩에서 10만 거란군은 강감찬이 이끄는 20만 고려군에게 대패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준배는 흡인력 있는 열연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알을 깨고 날 나오게 한 작품"이라며 "'고려거란전쟁'을 하기 전까진 알 속의 어떤 세계에서 좁은 바운더리의 역할을 가지고 연기했다면, 이제 좀 세상에 나온 듯 날개를 편 듯한 느낌이 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준배는 이어 "이제 나이도 먹었고, 좀 더 큰 세계로 나가서 여러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이제 시작이다"고 기대에 부푼 속내를 털어놨다.

'고려거란전쟁'은 지난 10일 전국 가구 13.8%의 최고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충남 논산에 거주하는 김준배는 "많이들 알아봐 주시는데, 크게는 못 느낀다"며 "촌에 있으니까 사람들 만날 일이 별로 없다. 마트에 가면 누가 알아보고 '장군'이라 부르면서 갑자기 인사한다. 심히 당황스러운데 감사한 일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준배는 애초 '고려거란전쟁'에 캐스팅이 됐을 때 고려 장수 역을 제안받았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전우성 감독님이 '절대 오랑캐는 안 시킨다. 무조건 고려 장수다'고 했거든요.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최수종 형님이 캐스팅되고 얼마 안 돼서 전화가 왔는데 '오랑캐를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같은 오랑캐라도 좀 다르다. 명재상이고 최고 사령관이기도 하고, 혈기 왕성한 장수가 아니라 노장이라 노회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존에 하던 악역이랑 많이 다를 겁니다'고 했죠. 그때부터 흥미진진해졌어요. 인물의 다른 이면이 많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랬고, 이렇게 큰 역할인 줄 몰랐어요."

김준배가 소배압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 김준배는 "어쨌든 거란은 문명국 행세를 하지만 본질은 야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고려와 대척점에서 싸울 수 있으니까, 뭔가 점잖은 풍모와 인격을 갖춘 듯하지만 숨겨 놓은 야수성이나 야만성 같은 게 한 번씩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느닷없이 숨겨놓은 비수처럼 팍팍 꽂히고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사나 연기할 때 그게 실리도록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김준배는 몽골어 연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거란어는 긴 세월이 흘러 거의 사멸했기 때문에 몽골어로 대체한 것. 김준배는 몽골어 연기에 대해 "파열음이 많아 어색했다"며 "숨을 내뱉으면서 해야 하는데 흉내를 못 내겠더라. 안 되는 발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끝까지 몽골어로 하기엔 무리였다. 대본이 나오면 몽골어로 다시 바꿔 이야기한다는 것도 너무 지난한 일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해서 전쟁 때나 큰 무리에서 어떤 지시를 하거나 이럴 때만 몽골어를 쓰고 기본적으론 한국말로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극 장르의 특성상 분장과 갑옷 착용 등에도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깊게 팬 얼굴 흉터와 거란 특유의 변발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김준배는 "이렇게 분장을 하니까 정말 이민족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분장팀이 진짜 노력했다. 매일 1시간 반씩 얼마나 꼼꼼하게 분장을 해주는지 내가 힘들어서 '좀 대충하면 안 되겠냐'고 몇 번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웃었다.

20kg 중량의 갑옷을 장착하고 연기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김준배는 "분장하고 갑옷까지 입고 있으면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잠깐 쉬다가 졸면 죽을 것 같다. 가발, 수염 등 전부 다 꽁꽁 싸고 있으니까 여름에는 숨이 컥컥 막혔다"고 토로했다.


"최수종 소탈한 형님..연기 호흡 흥미진진해"


김준배는 적장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최수종보다 7살 어리다. 최수종은 지난해 12월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 수상 소감을 전하며 "밖에서 '준배'라고 하면 어떻게 형에게 말을 함부로 하냐고 사람들이 욕하더라. 내 동생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당시 객석에 있던 김준배도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준배는 최수종의 당시 발언에 대해 "그건 형의 희망 사항"이라며 "누가 봐도 나보다 형인 거 다 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워낙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20대 때도 서른 넘은 형들에게 '형'이란 얘기도 들었다. 민증을 까줘야지 이제 납득하고 동생으로 생각하고 그랬다. 난 노안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이를 많게 본다"며 웃었다.

최수종과 연기 호흡에 대해선 흥미진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수종과 팽팽한 대립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준배는 "형님(최수종)이 연기를 다 받아준다"며 "어떻게 연기하겠다는 플랜을 가지고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전혀 없고, 나한테 다 맞춰주더라. 내가 리허설과 다르게 한 적도 있었는데, 형님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 받아주더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형이랑 붙으면 어떤 감정이나 연기가 나올지, 시너지가 생기면 또 어떤 다른 모습이 나올지 그걸 항상 기대하게 만드는 형님이었다"고 전했다.

극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최수종과 마주하며 연기한 신을 꼽았다. 김준배는 "강감찬과 압록강을 마주 보고 진영을 오가며 대화할 때 되게 재미있었다"며 "서로 속내를 숨기고 계속 떠보는 건데, 인생을 산 구력 같은 게 나타나는 장면이라 연기하면서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준배가 기억하는 최수종은 후배들에게 소탈하고 따뜻한 배우였다.

김준배는 "그냥 보기에는 되게 냉정하고 벽이 있을 것 같은데, 일할 때는 철저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우릴 대할 때는 너무 소탈하게 대했다"며 "너무 잘 웃고 장난도 잘 치신다. 얼굴에 막 장난기가 능글능글하다. 그러다 또 각 잡고 진지하게 연기하신다. 나도 처음엔 어렵게 대하다가 형님이랑 연기하는 게 재밌으니까 마음이 막 열리고 편해졌다. 이제 좀 친해지려고 하니까 (작품이) 끝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김준배는 거란 황제 아율융서 역을 맡은 김혁과의 '케미'로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김준배는 김혁과 호흡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촬영 전날 숙소 잡아서 거란 팀들과 모여서 대본 리딩도 하고 분석도 하면서 톤을 잡아갔다"며 "그러다가 톤이 한 번씩 어긋나면 서로 잡아주면서 재밌게 했다"고 전했다.


"귀주대첩 편집 만족, 가슴 벅차..감독들 갈등 NO"


'고려거란전쟁'은 1019년 고려를 침략한 10만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귀주대첩을 극화해 큰 관심을 받았다. 김준배는 클래이맥스를 장식한 귀주대첩 신이 담긴 최종회를 가족과 함께 시청했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1년 동안 고생했던 걸 다 보상받은 느낌이다. 결정체 같다"며 가시지 않은 여운을 드러냈다.

김준배는 이어 "결국 귀주대첩까지 가기 위해 우리가 계속 달려온 것"이라며 "배우들, 보조 출연자, 연출, 스태프 등 수백명이 뜨거운 여름에 함께 고생한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결국은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에 되게 벅찼다"고 덧붙였다.

김준배는 또한 귀주대첩 장면에 대해 "만듦새가 너무 좋아서 나는 만족하며 봤다"며 "물론 덜 찍은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잘 모르겠지만 예산 문제도 있었을 거다. 특히 강감찬이 (전쟁이 끝난 후) 민들레를 주워서 한 손에 들고 바라보는 장면은 너무 좋았다. 그런 게 드라마에 있었나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일까. 시청자들 사이에선 귀주대첩 신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다. 특히 거란군을 통쾌하게 쓰러뜨리는 장면은 생략되고,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고려군이 환호하며 전쟁에서 승리하는 마무리는 연출적으로 다소 아쉬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공동 연출을 맡은 전우성 감독과 김한솔 감독 간의 갈등 탓에 전투 신 일부가 의도적으로 편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제작진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가운데, 김준배도 "기사가 잘못 나온 것 같다"며 "전우성 감독님과 김한솔 감독님의 인격을 알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온다"고 두 감독 간의 갈등설을 부인했다. 김준배는 "두 감독 모두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며 "(귀주대첩 신은) 김한솔 감독이 어쨌든 편집하고 다 했으니까... 난 일단 만족한다"고 전했다.

김준배는 귀주대첩 장면에 대한 시청자들의 엇갈린 반응에 대해 "기대치가 커서 그런 것 같다"며 "쌓여 있던 기대치가 있으니까 사람들도 막 설레면서 보다가 빵 터져야 하는데 기대치만큼 안 터져서 뭐라고 하는 것 같다. 예산도 생각해야 한다.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거란전쟁'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2차 여요 전쟁을 마친 중반부를 기점으로, 고려 내부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원작 소설가 길승수 작가와 시청자들의 날 선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에도 촬영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준배는 "뒤늦게 기사를 보고 알긴 했는데, 촬영 현장에서 별로 영향은 못 느꼈다"며 "분위기는 좋았다. 그걸 티 내는 사람들도 현장에 없었고, 계속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김준배는 "귀주대첩까지 가는데 2차 전쟁과 3차 전쟁 사이에 8년이라는 틈이 있다"며 "'미싱 링크' 같은 역사를 메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나도 16부가 끝나고 나서 그다음부턴 어떻게 이야기를 채워 나가야 하나 약간 걱정하긴 했는데 그 와중에 나온 일들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이 조금 우리 생각과 다를 순 있다. 처음 가는 길을 갔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악역도 연기 잘하면 인정해주는 시대..멜로도 도전하고파"


최근 들어 이호철, 현봉식, 오대환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악역을 맡아온 배우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김준배도 악역 연기에 대해 이전과 달라진 반응을 실감한다며 "옛날엔 망한 작품에선 무슨 연기를 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묻히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엔 유튜브 짤이 생기면서 내가 연기만 잘하면 작품과 상관없이 계속 사람들 눈에 띄게 된다.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그냥 악역으로 보는 게 아니고 정말 존중해 준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그냥 그 배역에 맞게 연기하면 보는 사람들도 인정해 주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멜로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김준배는 "눈 부릅뜨는 깡패들을 이제 지겨워서 못 하겠다"며 "동네 아저씨인데 혼자 사는 아줌마를 몰래 짝사랑하는 그런 바보 같은 중년 멜로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더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소배압을 연기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그는 "너무 과분하게 사랑해 주셔서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스태프나 배우들이 그 사랑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고려 역사에 대해 앞으로 뒤 분들이 더 좋은 길을 가실 거라 믿고, 그 길을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성열 기자 | bogo1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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