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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반전" 다듀가 해체할 수 없는 진짜 이유[★FULL인터뷰]

  • 윤상근 기자
  • 2024-03-30

유난히도 추웠었던 2003년 겨울이 돼서 우린 녹음을 시작했어. 겨우 빈털터리 아니 빚쟁이, 텅 비어버린 키 체인, 집도 없는 떠돌이로 여러 밤을 지샜지. 억울해서 독을 품고 작업했어. 난 굶주린 늑대같이 매일 새벽까지 소리를 물어뜯고 갈갈이 찢어 발개서 내 뜻대로 재조합하며 재기의 칼을 갈았지. Somebody said 너네 둘론 안돼 but somebody said 기대할게. 우리는 준비했어 완전한 반전. 꼭 받고 싶었어 만점. 2004년 봄 첫 번째 앨범 발표. It was bomb. 다시 내 자릴 찾고 거칠고 더러운 이 바닥에서 뿌리내리고 다시 커갔어 우린 잡초.

- 다이나믹 듀오 정규 3집 1번 수록곡 '다시 쓰는 이력서'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스타뉴스와 15주년 기념 인터뷰를 준비하며 인상깊었던 랩 가사를 기사에 녹였던 당시가 떠올랐다. 2003년 즈음 CB MASS 해체를 겪고 난 이후의 위기를 20주년 인터뷰 때 다시금 떠올린 최자의 말에서 새삼 CB MASS의 역사적 성공이 머릿속에서 이미 많이 삭제돼 있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만큼 이 두 래퍼는 다이나믹한 듀오였다. 그리고 마흔을 넘고 유부남이 됐고,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15주년 인터뷰 당시 개코는 "CB MASS 활동까지 포함하면 한 20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었다.)

20주년 준비가 순탄하지 않았던 이유는 뜻밖의 성과 때문이기도 했다.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2' 미션곡 'Smoke'가 음원차트 대박을 찍으면서 이로 인해 밀려들어온 행사 섭외를 소홀히 할수가 없었고, 스케치를 일단 해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잠시 멈춰놓고 본업을 집중한 다음에 마음을 다잡고 작업을 재개했더니 더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한다.


다이나믹 듀오 10번째 정규앨범 '2 Kids On The Block'(투 키즈 온 더 블럭)은 2023년 '2 Kids On The Block' 파트1, 파트2에 이은 본편 완성작. 개코 최자가 10대 당시를 각자 떠올리며 다이나믹 듀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의 순서대로 펼쳐놓으며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현실적인 가사들로 이들의 음악을 사랑해 온 모든 이들에게 향수와 공감을 유도해봤다.

이들은 직접 티저 이미지에 실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사진과 내용을 통해 시선을 모았다. 실제로 1992년 개코와 최자는 초등학교 6학년 반 친구로 처음 만나 우정을 쌓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우정을 이어갔다.

"스케치를 어느 정도 해놨는데 뒤 파트가 마무리가 안됐어요. 그거를 할 시간이 활동 때문에도 안됐고요. 여러 행사들도 많아져서 집중을 못할 바에 잠시 멈추자고 회사 내부에서 결정했죠. 이게 앨범이 약간 일대기를 돌아보는 느낌이잖아요. 앨범의 콘셉트가 사실 조금 재밌기 시작했고 이렇게 일대기를 처음에는 어떤 드라마 제작사 분하고 이제 프로듀서 분하고 막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그동안 어릴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가 되게 재밌는데 드라마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라며 막 농담 삼아서 밥 먹으면서 얘기하다가 그러면 우리도 지금까지의 기록을 그때 느꼈던 감정들로 한 10곡 정도 만들면 재밌겠다라고 이제 콘셉트이 시작됐는데 드라마 제작 이야기가 무산된 거죠. 작업에서 그냥 드라마만 쏙 빠진 거예요. 메인 작품만 없어지고 OST만 남은 셈이죠. 두 명의 어떤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둘이 랩스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이 회의를 상당히 오래 했었어요."(개코)

"작업이 끊어지다보니 몸이 하나라서 완성이 안될 것 같으니 올해부터 천천히 만들게 됐고 그렇다 보니 완성도도 높아지고 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한 곡이 추가됐죠. 랩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결국 안 됐고 이 앨범을 일찍 만들게 된 계기가 됐죠."(최자)


최자는 "그 회의들이 사실 이번 앨범 조사에서 진짜 도움 많이 된 게 진짜 옛날에 어땠는지 얘기를 되게 많이 했다"라며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만났고 그 당시에 힙합 음악이 찾아들어야 되는 음악이었고 인터넷도 잘 안 돼서 수입 CD도 찾아다니고 유학 간 친구들한테 사달라고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렇게 우리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했고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됐는지 그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서 저희 앨범 작업하면서 좀 수월했다. 재료들이 이미 다 나와 있었다. 그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옛날 모습이 디테일하게 표현됐다"라고 말했다.

개코는 "다만 그때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라며 "시간대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 때문에 헷갈린 적도 있고 가사에서 공유한 게 많아서 겹치지 않으려고 체크를 많이 했다"라고 말을 이었다.

"오래 전 곡일수록 만드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19살 때 감정을 상기하는 게 힘들었죠."(개코)
"저희 인생도 즐거운 일만 있는 거고 잊었던 일도 떠올리면서 열받기도 했고요. 하하. 영광의 순간이라면 군 제대 이후 낸 7집인데 그때 운이 딱 맞아떨어져서 차트 올인하고 상복이 없었는데 모든 상을 그해 다 받았고요. 회사 직원들도 울고 그랬고요."(최자)

개코는 "왜 해체를 안하냐는 이야기가 3~4년 전부터 나왔다"라고 말해 시선을 모았다.

"그러니까 이제 신기한가 봐요. 제가 초등학고 6학년 때 처음 만나서 음악으로 활동 시간 이상으로 3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되게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가 세월이 지날수록 음악적인 취향과 이런 것들은 되게 비슷하지만 우리가 좀 서로 달라서 이렇게 오랫동안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뭘 배려하고 뭘 약간의 어떤 거리감도 주고 좀 각자의 시간도 배려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학습을 한 것 같아요. 가장 친한 친구라도 뭐든 다 알아야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개코)
"오랫동안 그 알맞은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그게 그게 팀워크인 것 같아요."(최자)


최자는 팀 활동 위기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며 "보통 팀이 해체를 하게 되는 이유가 큰 성공을 거뒀거나 아니면 완전 망했거나 서로 탓하고 그러면서 헤어지는데 음악하기 이전에 우리는 친구로 만나서 친구로 시작을 한 거니까 오히려 그냥 음악을 못하게 될 때도 그냥 음악을 못하면 음악을 못하는 거지 서로 친구를 다닐 필요는 없는 거고 약간 좀 순서가 반대였던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음악을 하려고 만난 아이들이니까 음악이 안 되면 헤어지는 건데 우리는원래 친구였는데 음악도 잘 돼서 다행이다 약간 이런 느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떠올려봤다.

"무브먼트 크루도 행운이었죠. 드렁큰타이거 윤미래 등 중심에 계신 분들이 저희를 예쁘게 봐주시고 존중해주시고 기회를 주셔서 음악적 기반을 잡을 수 있게 해주셨죠. 그때 회사는 활동 안하는 회사였고 그런데도 방송도 공연도 많이 함께 해주셔서 드렁큰타이거는 은인이고요. 그 이후에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화학 작용도 좋았고 함께 스튜디오에 모여서 기다렸다가 갑자기 8마디 랩 참여하고 그런 식으로 음악이 만들어졌어요. 뜨거운 추억이에요. 유튜브에도 무브먼트 크루 영상 보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죠."(개코)
"힙합이 그때만 해도 A급 장르가 아니었잖아요. 방송에 나가서 왜 저렇게 하나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무브먼트로 뭉치니까 파워풀해진 것 같아요. 뭉쳐 있기 때문에 강했고 서로 빛날 수 있었죠."(최자)

두 사람은 MC 해머와 쿨 허크, 노티 바이 네이쳐(최자), 사이프러스 힐(개코)의 앨범이 처음으로 들었던 CD라고 말했다.

"그때가 IMF가 터질 떄라 유학 실패가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가져온 CD들을 들었죠. 사이프러스 힐 CD는 부모님이 밖에서 일하시니까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걸 듣는 게 좀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앨범 커버가 해골이 쌓여 있고 막 이러다 보니까 그 당시에 제가 어린 마음에 '이거 들으면 지옥 가나?' 약간 그런 생각으로 진짜 이거 들으면 안 될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막 몰래 듣고 막 그랬죠."(개코)

한편 힙합 50주년과 국힙 대부라는 수식어와 함께 많이 언급됐었던 다이나믹 듀오는 "한국 힙합의 개성은 틀이 잡혔고 어린 아티스트도 유럽 투어는 티켓 만석을 찍기도 할 정도로 흉내낼 수준을 넘어서 우리만의 구조를 만들었다. 성숙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고 다만 들었을 때 기분 좋은 음악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기에 가사가 안 들리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음악적으로) 너무 다양해서 중점을 두는 것도 다양하다. 음악을 만들 때 우리가 자연스러운 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AEAO'와 'Smoke'의 흥행에 대해서는 "쌔뽁"이라고 답하고 "우리도 앨범을 냈을 때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계속 얘기했다. 언제 선택해서 가지고 놀지 모르니 꾸준히 내자는 생각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휴가 갔을 때 'AEAO'가 잘 됐는데 이후 외국에서 막 DM으로 연락이 왔어요. 너무 궁금해서 앱도 깔고 봤더니 너무 장난 아니어서 회사에 연락했더니 알고 있더라고요. 정말 이해가 안됐어요. 9년이나 지난 곡을 왜 영상으로 만들까 고민했죠. 역주행이 우리도 되니까 셋리스트에 급하게 넣고 노래 부르고 다녔죠. 실제로 주위에서 많이 역주행을 하는 걸 부러워했었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돌이나 배우 사진을 합성하는 게 유행이었더라고요. 나중에는 그 노래를 립싱크하는 게 번져서 'AEAO' 파트를 셀카로 찍어서 퍼지더라고요. 훅이 'AEAO'인데 아무 뜻도 없는 소리라 오히려 흥행에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두 사람은 "기회가 되면 최대한 해외로 나가서 우리 무대를 홍보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수익이 나야 하는데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났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유랑 극단처럼 스태프를 4명 정도만 하고 직접 스타일링도 하고 해서 그런 마음으로 나가보자 라고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비용을 줄여보자고 생각한 것도 기분 전환이 되고 생각도 비워지고 하니까 다시 와서 음악을 만들 동력도 나고 그랬죠. 예전에 미국에서 공연하면 한인들이 오거나 했는데 최근 미국 공연에서는 분위기도 바뀌었어요. 외국인도 많고 노래를 몰라도 즐기시고 그래서 가능성을 봤죠. "
윤상근 기자 | sg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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