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이 자신을 '당나귀'에 비유했다.
1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이하 '4인용식탁')에서는 박신양이 등장했다. 박신양은 한동안 연기생활을 쉬고 10년 동안 130작품을 그려왔고 최근 '제 4의 벽'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날 방송은 그의 전시회장에서 이뤄졌다.
박신양은 '사과' 시리즈를 선보이며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 하다가 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두봉 주교님을 만났다. 주교님이 본인의 건강 걱정보다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면서 사과 두 알을 주셔서 가져왔는데 감동해서 못 먹겠더라. 사과에 담긴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과' 시리즈를 그렸다. 동그라미를 그리는 건가, 감사함을 그리는 건가 여러가지를 그렸다"라고 말했다.
박신양은 러시아 유학 시절 만난 친구 키릴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그는 "3년 동안 80점을 그렸다"라고 밝혔다. 박신양은 '당나귀' 그림을 보여주며 "저는 전생이 있다면 당나귀였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의미 있는 짐, 가치 있는 짐이 뭔지를 생각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며 "아버지가 집을 짓는 꿈을 오랫동안 꾸셨다. 무가치한 꿈을 수 있지만 아버지를 지탱한 꿈이었다"라고 전했다.
박신양은 그림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며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가지는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지 않았냐. 지금은 그림값이 얼마다 전에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박신양은 딸에게 애정을 드러내며 "나는 딸에게 친구 같은 사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항상 먼저 말걸고 문자 보내고 그런다"라고 했다.
박신양은 1992년부터 3년 동안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유학을 했던 이유로 "체제가 붕괴될 때 예술가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혼란스러운 나를 변화시킬 수 있겠다 싶었다.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곳에 나를 빠뜨려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신양은 "친구를 사귀어야 연극을 볼 수 있을 텐데 '나랑 친구 하자'란 말을 처음으로 배워서 학교 문을 통과하는 한 명에게 '나랑 친구 하자'고 말했고 친구가 됐다. 그 친구가 나에게 모스크바에 있는 연극을 다 보여줬다"고 했다.
박신양은 처음 매체 연기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김혜수가 우리 학교 후배인데, 'TV도 하시냐'고 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다. '사과꽃 향기'로 TV 출연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박신양은 자신의 대표작 '파리의 연인' 중 명장면인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르는 장면의 비하인드로 "그때 대본에 '한기주,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한다(선곡은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써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추천을 받았는데 그 노래가 공통적으로 있었다. 유리상자 노래를 한기주가 불러도 될까 싶었는데 다 그걸 하라더라. 엘튼 존의 공연 실황을 보면서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신양이 '파리의 연인'에서 '애기야 가자'란 대사를 하며 소름 돋지 않았냐는 질문엔 "정말 난감했다.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이 정말 있나?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싸인'을 하면서는 시신 부검을 100번 봤다고. 박신양은 "법의학자들의 본심은 어떨까 생각하고 싶었다. 관찰하면서 어떤 철학으로 그런 걸 하시는지 봤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조금씩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안현배 미술사가는 "인도 속담 중에 '당나귀를 쓰러트리는 것은 마지막 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누군가는 삶의 짐을 지고 이겨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신양도) 지치거나 힘이 드는 것을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신양은 "저는 진짜 힘들었지만 그림 그린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짐을 진다는 건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겠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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